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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부패의 녹색.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면서도 삶이라는 여정을 떠나보지 않겠는가. 이야말로 덧없고도 위대하지 않은가. A tale of green, of life and mortality. (이어지는 아무 말 대잔치) 매우 인상 깊게 보았지만, 전혀 상업적이진 않아서 쉽게 추천할 수 있을 영화는 아닙니다. '내가 뭘 보고 있는거지?' 싶으실 수도 있고, 영화에서 뭘 얻어가는지도 천차만별일 것 같네요. 제 경우에는 원래 녹색기사 이야기를 대충은 알았고, 속깊은 뜻이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전해져 내려온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요. 이 영화를 보고서야 그 이야기에 깊이가 주어진 것 같은, 혹은 원래 있던 깊이를 이제야 알게 된 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이야기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중세 시대 기사도의 고귀함을 애써 찾아보려 하면서도, 철과 모험담을 내세워 명예를 추구하는 것을 비웃으면서도, 그 뒤에 자리 잡은 인간의 여러 욕망을 비추면서도, 지나간 과거의 몰락을 상기시키면서도, 우리가 어디서 구원을 찾아야 하는지...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재해석은 이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엮어져 제 앞에 나타난 영화는 초반에는 어둠이 드리운 화면을 보여주다가 끝에 가서는 기어코 제게 죽음을 경험시켜주었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내면의 다른 것들을 비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비추어졌을지 궁금해지는 영화였습니다. (여기부터 아마도 스포) 영화의 의미 말고 영화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가웨인은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그 시점에서 영화가 끝나지만, 크레딧 후 영상에서 딸이 왕관을 쓰는 모습으로 보아하니 녹색 기사는 원작에서와 같이 죽이는 시늉만 하고 가웨인을 보내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영화가 영웅 서사를 비트는 것으로 봐서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는 결말도 적절하겠지만요.)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적어도 깨달음이 있었기에 예배당에서 보았던대로의 비극적인 결말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끊임없이 죽음을 말하던 영화는 크레딧까지 다 올라간 그 끝에서야 작은 희망을 선사합니다. 마치 영화 관객에게 죽음을 경험시켜준 후 "이제 죽음을 알았으면 삶다운 삶을 살라"라고 말하듯이. 이야말로 감독의 '작은 친절'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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