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MavericK

MavericK

7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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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빛

영화 ・ 1963

평균 3.8

인류의 역사를 바꾼 분기점에는 언제나 회의주의가 있었다. 최초의 회의주의자들인 소피스트(줄곧 궤변론자로 잘못 알려진)를 시작으로 현대의 니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를 얻기위해 거듭되는 의심속에서 신의 존재를 탐색하고 규명한다. 허나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숙명을 지녔기에 생의 수레바퀴에서 늘상 고통의 무게를 동반한 채 보잘 것없는 미약한 걸음을 내딛을 뿐이다. 맹목적인 믿음을 마음에서 제하고 의심하는 태도로 신께 다가설 때, 어느 곳에나 편재하며 전에도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하실 그 분께서 역설적으로 창 너머로 빛의 형상으로 이 땅위에 임하신다. 그 분은 언제나 고난받는 자들과 함께 눈물흘리신다. 흔히 오해하는 커다랗게 왜곡된 명제. 한 손에 예리하고 날렵한 곡선의 위용을 자랑하는 검을 높게 치켜들어 하늘을 향해 겨누는 영웅이 칼 끝의 반사되는 빛을 쳐다보며 당당하게 연극조로 내뱉을 것만 같은 한 마디.신은 죽었다. 사실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는 두려움에 떨며 탄식과 회환섞인 중얼거림이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니체는 20세기의 장막 앞에서 탁월한 선구안으로 미래에 벌어질 살육의 시대를 예고한 진정한 천재다. 그가 죽고 14년 후 1차세계대전의 피의 광란이 요동치고 그것은 영화속 요나스의 막연한 불안감으로 전이되어 20세기 전체를 경유한다. 회의를 통해 인간은 발전한다. 회의적인 선언뒤에 우리는 거듭난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자 생육신으로 이 땅위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뒤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준비하신다. 그곳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가지말라 간청드리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를 사탄이라 꾸짖으시며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한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누구든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리고 “주여 주여 어찌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외침으로 지옥을 온 몸으로 체감하신 후에 부활하신다. 그렇게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침묵은 존재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신이 죽어 없어졌기에, 이사야 53장의 고난의 종께서 진실로 사라졌기 때문에 20세기의 한 가운데 싸늘하게 놓여있던 영화 속 60년대는 수난의 연속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니체는 인간 모두가 Übermensch가 되어 그들 스스로 초월적 존재로 변모하여 신을 대체하기를 원했다. 허무주의에 관한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표준과 보편적인 기준점이 사멸된 영화 속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영원한 지옥을 맴돌며 거듭나지 못하고 정신없이 물질적 사고에 사로잡혀 하릴없이 표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