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수진

수진

2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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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선언

영화 ・ 1983

평균 3.7

내가 어딜 봐서 대학생이니? - '바보 같은 어른'이라고 불리는 절름발이 동칠은 거리를 거닐며 다니다가, 자신의 영화가 스포츠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비관한 영화감독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그가 차고 있던 시계를 훔치려다 아직 숨이 남아있는 그와 눈이 마주치지만, 영화감독은 무언가를 말하고 결국 곧 숨을 거둔다. 죽은 영화감독 덕분에 오히려 옷과 돈이 생긴 동칠은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후 할 일 없이 거닐던 동칠은 계단 옆에서 몹시 예쁜 한 여자를 맞닥뜨리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를 무작정 따라가기 시작한다. 오프닝 타이틀과 어린이의 보이스오버가 시작부터 파격적인 기운을 물씬 풍기는 영화다. 1980년대 초반 영화임을 생각하면 시대를 매우 앞서간 느낌이 드는데, 대사를 들려주지 않고 전자오락의 효과음이나 음악만을 활용하는 시퀀스들의 존재는 마치 무성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이 선역이거나 멋진 인물이 아니라 머저리 같은 행각을 일삼는 바보 동칠이란 점도 세련되기 짝이 없다. 서사에 있어서도 그저 바보 동칠의 행각을 따라갈 뿐 특정한 서사랄 것이 없다고도 보인다. 여러모로 틀을 거부한 파격적인 영화인 셈이다.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보는 이의 예상을 보란 듯이 뒤집어엎는 과감함에 감탄할 수 있었는데, 이 점에는 이보희 배우님의 대활약이 일조한다. 영화는 주변에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바보들의 행각을 과장되게, 하지만 전체적인 그 광경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그런 대책 없는 행각 끝에 후반부에 맞이하게 되는 목욕탕 시퀀스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한국 영화의 그것들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정말 뛰어난 한국 영화들을 지금껏 많이 봐왔지만, 이 영화는 그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과연 손색이 없다. 이제 내년이면 개인적으로 영화를 나름 열심히 보기 시작한 지 5년 차가 된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영화를 꾸준히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재미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것 그 자체가 쓸데없이 옳고 그름을 따지던 나의 낡은 태도와 고정관념과 틀을 하나씩 부수는 행위로써 작동했다고 내가 직접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내 스스로 품고 있었으나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맞이할 때 참 기뻤다. 이 영화 또한 펄펄 끓는 진심과 뜨거운 사랑이 들어있기에 내가 열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