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상훈남

인시디어스: 두번째 집
평균 3.3
2023년 07월 14일에 봄
공포보다 전편의 퍼즐 조각들을 전부 맞춰내는 연출이 더 돋보였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몇몇 장치들은 전작들보다도 약했고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 '귀신이 나올 때마다' 끊기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영화, 공포영화만 아니었으면 진짜 재밌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 전편보다 스토리는 정교했고 가족간의 따뜻한 마음도 잘 전달이 되었지만, 포스터에 써있는 <컨저링>보다 '무서운' 영화라고 자부할 정도의 무서움은 이상하게 전편보다 훨씬 약했다. "진작 당신인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피아노 실력이 엉망진창이었으니까." 현실감 있는 핸드 헬드 기법은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조쉬가 망치를 들고 문을 박살낼 땐 <샤이닝>이 떠올랐다. 이 영화가 저 작품들과는 달리 정말 아쉬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귀신들의 행동'이다. 귀신을 소재로 한 <곡성>의 귀신들은 정말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 자체를 억제하지만, 이 작품들의 귀신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겁만 줄곧 줘놓고는 막상 죽여야 할 땐 '인간의 몸'으로 육체적인 폭력을 가하고, 그 피해가 너무나도 밋밋하다. 조쉬가 칼을 들고 칼에게 덤빌 땐 '갑자기 분위기 액션영화'처럼 합을 맞추는 것 같았고 조쉬가 망치를 들 땐 가족들이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귀신이 퇴치되고 가족들이 부둥켜 안을 거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넌 한심하고 배은망덕한 년이야. 유령을 두려워하며 인생을 낭비하다니.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내가 널 어둠 속의 내 집으로 데려가면 빛을 보며 살던 이 짧은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깨닫게 될걸." 이 시리즈 정주행 중 가장 지쳤던 부분은 바로 '긴장할 때마다 근육이 경직된다는 것'이었다. 소름 돋는 음향 깔릴 때마다 관객들은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사로잡히며 온몸의 신경이 예민한 상태에 돌입한다. 이 긴장이 해소가 되어야 하는데 긴장만 시켜놓고 해소 단계에 돌입을 못 하다 보니까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좋은 공포 영화는 긴장을 시킨 다음 적절히 해소시켜주지만 이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또 긴장해야 돼?'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은 게 탈이었고 귀신들의 등장이 '조금 놀랄 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는 게 흠이었다. 그 긴장감이 맴도는 시간 동안 '와 여기에서 이렇게 생긴 귀신이 이렇게 등장하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며 상상하던 것들이 더 무서웠다. [이 영화의 명장면 📽️] 1. 병동의 할아버지 장면의 '순간'에 압도당했던 것만 같았던 장면. 조쉬가 "만지지 말라"는 로레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만지작댈 때 (공포 플래그) 알아챘어야 했는데 넋놓고 있다가 공포 영화 보면서도 잘 안 놀라는 내가 온몸이 '찌릿'했다. 역시, 갑작스런 공포를 선사해야 할 땐 '일단 안심시키지' 전략이 최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보니 공포 영화는 일종의 심리 싸움과도 같았다. 관객들이 언제 긴장의 끈을 놓치는지, 언제 파고 들어야 깊숙히 침투되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좋은 공포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기도 했다.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얌전히 있어." 2. 맞춰지는 퍼즐 '전편을 봐야지만' 성립이 된다는 해소라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봤더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저 문을 저 사람이 열었던 거였어?' 매장면을 감탄하면서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떡밥을 뿌려놓고 회수하는 것'이 아닌, '사소한 요소들도 하나의 트릭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유연하고도 영리한 연출이 '역시 제임스 완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보가 울렸던 것도, 문이 열렸던 것도 전부 귀신의 소행이 아닌 것으로 다뤄낸 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오게 될 곳인걸. 종착지는 더 나은 곳이어야겠지만." 빨간 문은 열렸다 인시디어스의 상징과도 같은 그 문을 열고 나서의 구체적인 공포가 궁금해졌다 모든 준비는 마쳤다 극장 안에서 추위가 아닌 두려움에 벌벌 떨었으면 좋겠다 "이제 여행은 안 하는 거다. 우린 이 세상에서만 살아가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