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upang2003

나이트비치
평균 2.8
레이철 요더의 소설 ‘나이트비치’를 원작으로한 생활밀착 ‘공포 육아’ 코미디. ‘나이트비치‘의 가장 큰 특성은 주연 등장인물들에게 이렇다 할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작중 에이미 아담스가 맡은 캐릭터는 ’엄마‘ 혹은 ’여보‘ 등의 호칭으로만 불리고, 이는 그가 도맡아 키우는 아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게는 전부 이름이 주어진다. 이는 주인공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일인칭 소설과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주인공과 다른, 육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보다 특별하고 행복해 보이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다만, 영화는 이토록 수동적이고 우울한 삶을 그대로 전시하는 대신 이따금 주인공이 ’사회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할 법한 행동들을 교차 편집해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고통을 남의 일처럼 객관화하는 남편에게 따귀를 날리는 상상 속 장면을 보여 주거나 주인공의 독백을 적절하게 삽입하는 식이다. 이러한 ‘나이트비치‘의 코멘트는 그동안 ’모성 신화‘를 파괴해 온 수많은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툴리‘는 엄마가 되기 전의 자아와 엄마가 된 후의 자아를 만나게 하는 영화적 허용으로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틸다 스윈튼 주연의 ‘케빈에 대하여‘는 아이들의 무지함에서 비롯되는 고통스러운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엄마-자식‘의 관계가 완전한 타인과의 관계와도 같다는 점(자식이 내 것인냥 과도한 참견을 사랑과 염려로 포장하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엄마들이라면 기암할 모자관계였지 않은가)을 상기했다. ‘나이트비치‘의 독백과 교차 편집도 다소 노골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이러한 맥락에서 직설적인 영화적 어법을 사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름 없는 주인공과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과 주인공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 용기는 한 여성의 변신만으로는 일궈내기 어렵다. ’엄마됨‘과 ’개인의 삶‘이 양립할 수 있도록 사회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이트비치‘의 독특한 상상력은 이렇게 우리 사회를 향한, 유효한 지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