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덥다

덥다

2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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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에로이카

영화 ・ 1970

평균 3.5

영화의 형식이 너무 강박적이라 급성장 이후 일본 급진 좌파의 혁명적 사상, 운동 등은 그저 시대적 부산물로 남아있을 뿐, 정치적으로 해석될 거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의 니힐리즘과 정치적 성향, 사건의 서사 등은 - 마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의 인물들이 괴이한 카메라 워크 속 공간에 갇혀 버렸듯이 - 형식으로 옭아맨 구조 속에서 공허하게 외치다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초기 고다르의 ‘혁명적 청년들’과 안토니오니의 화면들이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게 되는데, 그 방식이 지극히 탐미적인 인용에 머물러있어 감독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유럽의 무언가를 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영화에 다시 주입하기 위해 얼마나 지적이고 치밀한 가감이 필요했는지 상상해 볼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얼핏 영화에서 보이는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영화적 느낌은 느낌에 머무를 뿐 아예 다른 작동 방식이라 생각했다 + 중간에 광선검 같은 거 변기에 빠뜨리는 건 도대체 뭐지) <연옥 에로이카>의 경우 요시다 기주의 중기 작품이지만, 첫 작품으로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를 만들었던 파스빈더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고다르의 스타일과 악동적 미학, 건조함은 칭송하며 가져오되 그의 정치성이나 창조성은 결여된 듯한 그 인상이 닮았다. (오히려 각자의 전 세대의 영화보다 ‘클래식’ 했다는 점에서도) 그의 3부작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사실 거의 자국민 - 심지어 그 시절에 대한 시대 스터디가 이루어지고, 쇼치쿠 영화사와 atg 필름의 역사를 훑고 봐야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걸출한 천재 오시마 니기사가 서양권에게 이해받고자 했던 변화가 작가 내적으로 존재했다면, (<전장의 크리스마스>나 <감각의 제국> 등 형식적 강박이 사라지고, 이해의 여지와 즐길 수 있는 거리가 포함된) <연옥 에로이카>는 <에로스 + 학살>에 비해 덜 언급되는 작품임에도, 정말 놀랄 만큼 충실하고 열렬하게 관객에게 친절하지 못한다. 근작까지도 그런 형식적인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하니, 이건 오직 로망 포르노가 시작되기 전 존재할 수 있었던 정말 ‘영웅적인 연옥’ 속의 영화 아닐까. 노트북으로 봐서 괴상한 구도가 주는 화면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으나, 실제 건물 구조와 물적 기물을 이용한 프레이밍과(예산 문제도 있었을 듯) 동유럽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카메라 워크가 단순 기교와 형식에 머물지 않고, 분명 정동의 재료로서 기능하고 있음에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