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do akira3.5왜곡된 시공간, 기묘한 카메라구도에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점철된 급진주의자들에 기이한 혁명곡!! 내러티브를 철저히 부숴버리고 쿠데타를 연상케하는 당시의 일본의 시대와 영상실험은 이 영화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해도 한번쯤은 그 가치를 느껴볼 필요가 있다!! p.s 내가 사모하는 오카다 마리코님은 왜 이렇게 여기서 살이 많이 찌셨나??!!....좋아요4댓글0
Withoutflatwhite4.5살면서 한 번 정도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 요시다 기주의 급진주의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인 <연옥 에로이카>는 일반적인 카메라 구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면으로 거부하며 거의 모든 장면들을 최고 수준의 시각 예술로 끌어올린다. 오프닝 샷부터 카메라는 보통의 영화들보다 훨씬 높은 각도에서 불안정하게 위치한다. 여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걷는 동안, 프레임의 4/5는 주차장 지붕이 차지하고 있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프레임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그리고 인물들이 밖으로 나오면, 카메라는 그들을 조롱하듯 황무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와이드하게 인물들을 잡아낸다. 그들은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제대로 설 자리가 없다. 카메라 구도 외에도 거울을 활용한 반사 이미지들과 그로테스크한 사운드 역시 환상적이며 모든 것이 합쳐진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놀라운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주인공 '쇼다'는 레이저 광선 사업을 기획하고 연구중인 엔지니어이다. 영화는 그의 아내가 스스로를 미아라고 주장하는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오며 시작된다. 난해하지만 어느정도는 이해 가능한 초반 10분이 지나면 서사 장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관객을 '영화적 미아'로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파괴되어 있다. 무작위적으로 튀어나오는 과거와 미래에, 한 술 더 떠서 그 어느 시간에도 속하지 않는, 아예 영화를 이탈한 초현실적 장면들까지. 아마 살면서 본 난해한 영화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관객에게는 3~4가지 정도의 제한된 정보만이 주어진다. 첫 번째로 현재 엔지니어인 주인공 ‘쇼다’는 과거 50년대 일본 급진주의 혁명 단체의 일원이었다. 두 번째로 그가 가담한 단체는 미국 대사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세 번째로 그 계획은 제대로 실행도 되기 전에 실패했으며 단체 내부에선, 조직 내에 스파이가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여러가지 추측만은 가능할 것이다. 혁명에 실패한 이들은 시간이 흐르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체제 안의 구성원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잠재의식 아래에는 여전히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살아 숨쉰다. 레이저 광선의 성질은 직진하는 것이다. 확산을 해버리는 전파와 빛과는 다르게 레이저는 방해하는 물질이 있다면 그 조직을 파괴하고 통과해버린다. 굳이 도식적으로 본다면 '쇼다'의 현재 직업은 그가 몸담았던 급진주의와 병렬된다. 또한 미아인 동시에 모두가 자신의 부모님이라 주장하는 '소녀'는 '쇼다'의 실패한 기억을 각성시키는 매개체이다. 억눌려져 무의식 속의 망령으로써만 존재하던 '쇼다'의 기억은 '소녀'의 출현으로써 실체화된다. 영화 중간 "모든 아버지를 죽여야된다"는 '소녀'의 연설은 국가 정치인들을 암살하고 체제를 전복시키려던 젊은 혁명가들과의 연관성이 있을수도 있고,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꿈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겠다. 소녀의 실제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쇼다'와 20년전 같은 단체에 속해있던 것으로 보이나 (동일한 배우가 연기함), 이들은 서로를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다. "한 가지의 말에도 많은 진실이 있어요", "증명하는 이의 승리입니다" 라는 남자의 발언은 이 영화의 스토리가 파괴되어 있는 이유처럼 들린다. 실패한 이들에게 역사를 집필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연옥이라는 단어를 영화 제목으로 처음 알게 되어 검색을 해보았더니, 가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는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며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고 한다. <연옥 에로이카>는 혁명의 실패 이유보다는 내부분열로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멸했던 이들의 공허함을 다루는 작품이다.좋아요3댓글0
덥다4.0영화의 형식이 너무 강박적이라 급성장 이후 일본 급진 좌파의 혁명적 사상, 운동 등은 그저 시대적 부산물로 남아있을 뿐, 정치적으로 해석될 거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의 니힐리즘과 정치적 성향, 사건의 서사 등은 - 마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의 인물들이 괴이한 카메라 워크 속 공간에 갇혀 버렸듯이 - 형식으로 옭아맨 구조 속에서 공허하게 외치다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초기 고다르의 ‘혁명적 청년들’과 안토니오니의 화면들이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게 되는데, 그 방식이 지극히 탐미적인 인용에 머물러있어 감독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유럽의 무언가를 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영화에 다시 주입하기 위해 얼마나 지적이고 치밀한 가감이 필요했는지 상상해 볼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얼핏 영화에서 보이는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영화적 느낌은 느낌에 머무를 뿐 아예 다른 작동 방식이라 생각했다 + 중간에 광선검 같은 거 변기에 빠뜨리는 건 도대체 뭐지) <연옥 에로이카>의 경우 요시다 기주의 중기 작품이지만, 첫 작품으로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를 만들었던 파스빈더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고다르의 스타일과 악동적 미학, 건조함은 칭송하며 가져오되 그의 정치성이나 창조성은 결여된 듯한 그 인상이 닮았다. (오히려 각자의 전 세대의 영화보다 ‘클래식’ 했다는 점에서도) 그의 3부작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사실 거의 자국민 - 심지어 그 시절에 대한 시대 스터디가 이루어지고, 쇼치쿠 영화사와 atg 필름의 역사를 훑고 봐야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걸출한 천재 오시마 니기사가 서양권에게 이해받고자 했던 변화가 작가 내적으로 존재했다면, (<전장의 크리스마스>나 <감각의 제국> 등 형식적 강박이 사라지고, 이해의 여지와 즐길 수 있는 거리가 포함된) <연옥 에로이카>는 <에로스 + 학살>에 비해 덜 언급되는 작품임에도, 정말 놀랄 만큼 충실하고 열렬하게 관객에게 친절하지 못한다. 근작까지도 그런 형식적인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하니, 이건 오직 로망 포르노가 시작되기 전 존재할 수 있었던 정말 ‘영웅적인 연옥’ 속의 영화 아닐까. 노트북으로 봐서 괴상한 구도가 주는 화면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으나, 실제 건물 구조와 물적 기물을 이용한 프레이밍과(예산 문제도 있었을 듯) 동유럽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카메라 워크가 단순 기교와 형식에 머물지 않고, 분명 정동의 재료로서 기능하고 있음에 감탄했다.좋아요2댓글0
Dh
4.0
무언가 해보지도 못하고 길을 잃은 미아들의 공허 #버리지 못한 욕망
새까칩
2.5
배신하거나 스파이가 되는 것은 굉장히 성적인 행위야. 그 순간 달콤하게 마비되는 전율이 온 몸으로 전해져.
sendo akira
3.5
왜곡된 시공간, 기묘한 카메라구도에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점철된 급진주의자들에 기이한 혁명곡!! 내러티브를 철저히 부숴버리고 쿠데타를 연상케하는 당시의 일본의 시대와 영상실험은 이 영화의 맥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해도 한번쯤은 그 가치를 느껴볼 필요가 있다!! p.s 내가 사모하는 오카다 마리코님은 왜 이렇게 여기서 살이 많이 찌셨나??!!....
Withoutflatwhite
4.5
살면서 한 번 정도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 요시다 기주의 급진주의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인 <연옥 에로이카>는 일반적인 카메라 구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면으로 거부하며 거의 모든 장면들을 최고 수준의 시각 예술로 끌어올린다. 오프닝 샷부터 카메라는 보통의 영화들보다 훨씬 높은 각도에서 불안정하게 위치한다. 여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걷는 동안, 프레임의 4/5는 주차장 지붕이 차지하고 있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프레임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그리고 인물들이 밖으로 나오면, 카메라는 그들을 조롱하듯 황무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와이드하게 인물들을 잡아낸다. 그들은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제대로 설 자리가 없다. 카메라 구도 외에도 거울을 활용한 반사 이미지들과 그로테스크한 사운드 역시 환상적이며 모든 것이 합쳐진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놀라운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주인공 '쇼다'는 레이저 광선 사업을 기획하고 연구중인 엔지니어이다. 영화는 그의 아내가 스스로를 미아라고 주장하는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오며 시작된다. 난해하지만 어느정도는 이해 가능한 초반 10분이 지나면 서사 장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관객을 '영화적 미아'로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파괴되어 있다. 무작위적으로 튀어나오는 과거와 미래에, 한 술 더 떠서 그 어느 시간에도 속하지 않는, 아예 영화를 이탈한 초현실적 장면들까지. 아마 살면서 본 난해한 영화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관객에게는 3~4가지 정도의 제한된 정보만이 주어진다. 첫 번째로 현재 엔지니어인 주인공 ‘쇼다’는 과거 50년대 일본 급진주의 혁명 단체의 일원이었다. 두 번째로 그가 가담한 단체는 미국 대사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세 번째로 그 계획은 제대로 실행도 되기 전에 실패했으며 단체 내부에선, 조직 내에 스파이가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여러가지 추측만은 가능할 것이다. 혁명에 실패한 이들은 시간이 흐르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체제 안의 구성원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잠재의식 아래에는 여전히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살아 숨쉰다. 레이저 광선의 성질은 직진하는 것이다. 확산을 해버리는 전파와 빛과는 다르게 레이저는 방해하는 물질이 있다면 그 조직을 파괴하고 통과해버린다. 굳이 도식적으로 본다면 '쇼다'의 현재 직업은 그가 몸담았던 급진주의와 병렬된다. 또한 미아인 동시에 모두가 자신의 부모님이라 주장하는 '소녀'는 '쇼다'의 실패한 기억을 각성시키는 매개체이다. 억눌려져 무의식 속의 망령으로써만 존재하던 '쇼다'의 기억은 '소녀'의 출현으로써 실체화된다. 영화 중간 "모든 아버지를 죽여야된다"는 '소녀'의 연설은 국가 정치인들을 암살하고 체제를 전복시키려던 젊은 혁명가들과의 연관성이 있을수도 있고,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꿈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겠다. 소녀의 실제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쇼다'와 20년전 같은 단체에 속해있던 것으로 보이나 (동일한 배우가 연기함), 이들은 서로를 전혀 기억해내지 못한다. "한 가지의 말에도 많은 진실이 있어요", "증명하는 이의 승리입니다" 라는 남자의 발언은 이 영화의 스토리가 파괴되어 있는 이유처럼 들린다. 실패한 이들에게 역사를 집필할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연옥이라는 단어를 영화 제목으로 처음 알게 되어 검색을 해보았더니, 가톨릭 교리에서 연옥은 천국으로 가기에는 자격이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의 큰 죄는 짓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며 영혼들은 연옥에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이승에서의 죄를 씻고 정화한다고 한다. <연옥 에로이카>는 혁명의 실패 이유보다는 내부분열로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멸했던 이들의 공허함을 다루는 작품이다.
덥다
4.0
영화의 형식이 너무 강박적이라 급성장 이후 일본 급진 좌파의 혁명적 사상, 운동 등은 그저 시대적 부산물로 남아있을 뿐, 정치적으로 해석될 거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영화 속 인물의 니힐리즘과 정치적 성향, 사건의 서사 등은 - 마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의 인물들이 괴이한 카메라 워크 속 공간에 갇혀 버렸듯이 - 형식으로 옭아맨 구조 속에서 공허하게 외치다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초기 고다르의 ‘혁명적 청년들’과 안토니오니의 화면들이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게 되는데, 그 방식이 지극히 탐미적인 인용에 머물러있어 감독의 취향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유럽의 무언가를 70년대 일본 언더그라운드영화에 다시 주입하기 위해 얼마나 지적이고 치밀한 가감이 필요했는지 상상해 볼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얼핏 영화에서 보이는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영화적 느낌은 느낌에 머무를 뿐 아예 다른 작동 방식이라 생각했다 + 중간에 광선검 같은 거 변기에 빠뜨리는 건 도대체 뭐지) <연옥 에로이카>의 경우 요시다 기주의 중기 작품이지만, 첫 작품으로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를 만들었던 파스빈더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고다르의 스타일과 악동적 미학, 건조함은 칭송하며 가져오되 그의 정치성이나 창조성은 결여된 듯한 그 인상이 닮았다. (오히려 각자의 전 세대의 영화보다 ‘클래식’ 했다는 점에서도) 그의 3부작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사실 거의 자국민 - 심지어 그 시절에 대한 시대 스터디가 이루어지고, 쇼치쿠 영화사와 atg 필름의 역사를 훑고 봐야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걸출한 천재 오시마 니기사가 서양권에게 이해받고자 했던 변화가 작가 내적으로 존재했다면, (<전장의 크리스마스>나 <감각의 제국> 등 형식적 강박이 사라지고, 이해의 여지와 즐길 수 있는 거리가 포함된) <연옥 에로이카>는 <에로스 + 학살>에 비해 덜 언급되는 작품임에도, 정말 놀랄 만큼 충실하고 열렬하게 관객에게 친절하지 못한다. 근작까지도 그런 형식적인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하니, 이건 오직 로망 포르노가 시작되기 전 존재할 수 있었던 정말 ‘영웅적인 연옥’ 속의 영화 아닐까. 노트북으로 봐서 괴상한 구도가 주는 화면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으나, 실제 건물 구조와 물적 기물을 이용한 프레이밍과(예산 문제도 있었을 듯) 동유럽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카메라 워크가 단순 기교와 형식에 머물지 않고, 분명 정동의 재료로서 기능하고 있음에 감탄했다.
이한강
3.5
이 당시 일본 영화의 특징인지 감독의 특징인지 인상적이네. 최인훈 선생님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
boinda
3.5
화면을 보는 것 만으로 즐겁다 장면 장면이 사진 처럼 파격적 신선함
전정혜
3.5
영화가 꾸는 배덕의 꿈 국민의힘보다 아름답게 멸렬한 집단무의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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