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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신사도, 기사도)의 숨통이 끊기고 피의 이념(내셔널리즘)이 들끓게 되는 1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살인 병기들(탱크, 기관총, 독가스 등의 대량살상무기)이 사람을 잡아먹는 장이었다. 레마르크는 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20세기 최고의 반전 소설을 썼고, 이후 출간될 전쟁 소설의 원형이 됐다. "이 작품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을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뿐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근대교육이 시행되면서 무기뿐만 아니라 군인도 싼값에 생산되기 시작했다. 발달된 운송수단은 끊임없이 물자와 군대를 끌어들였고, 탱크 속에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막대한 기술적 혁신이 인간을 숫자가 되게 했다. "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리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역자가 되거나, 탈영병이 되거나, 겁쟁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이런 표현들을 쓰곤 했다. 우리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향을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이 시작되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대번에 눈을 뜨게 되었다. 어른의 세계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린 어느새 끔찍할 정도로 고독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고독과 싸워나가야 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거죠? 조국을 위해 싸우는 거지. 그럼 프랑스 놈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거죠? 모국을 위해 싸우는 거지. 그럼 누가 옳은 거죠? 그야 이긴 놈이 옳은 거지." 국가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막상 죽어나가는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영문을 모른다. "강철 같은 청춘, 청춘이라! 우리는 모두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포탄, 독가스 연기, 탱크의 소함대가 짓밟고 갉아먹으며 목숨을 앗아 간다. 이질, 유행성 감기, 장티푸스가 목을 조르고 불태우며 목숨을 앗아 간다. 참호, 야전 병원, 공동묘지, 결국 우리가 갈 데라곤 이곳들밖에 없다." 도륙을 위한 죽음의 땅이 바로 서부 전선이었고, 거기서 갈려나가는 청춘을 망각한 보고가 바로 '이상 없음'이었다. 레마르크는 그동안 독일 작가들이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생생한 속어체를 구사하여 언어의 폭을 넓혔고, 그랬기에 지금 우리도 그 참호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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