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미야자키 하야오의 필모그래피에는 현실의 명확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단 두개 존재한다. 하나는 붉은돼지,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영화. "바람이 분다" 다. . 두 영화가 여러모로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영화내내 전쟁과 하늘을 비슷한 무게로 비추는 시선은 더욱 두 영화를 비슷해보이게 만든다 . . 두개의 방법론에는 공통점도, 차이점도 있지만 내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차이점이다. 이 영화를 붉은돼지와 연결지으며 하야오의 일관된 "반전주의 영화"에 카테고라이징하는 것은 붉은돼지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두 영화는 모두 낭만이 사라져가는 세계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동시에 하늘을 가슴에 품은 이들을 다루고 있지만 바람이 분다의 지로와 붉은돼지의 포르코가 보이는 삶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두 영화를 서로의 대립항으로 만들어 버린다. 포르코는 "파시스트가 되느니 평생 돼지로 살겠다" 라는 조롱을 서슴치않고 뱉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붉은돼지는 주인공이 하늘을 유영하고자하는 욕망을 그리는 것 못지않게 그 꿈을 좌절시키는 세계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묘사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 우리가 붉은돼지에 감동했던 이유는 포르코가 이룰 수 없는 꿈으로 가득한 몽상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가 현실의 쓰라림을 감수하면서도 몽상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돼지"로 살기를 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동했던 것이다. . 오랜 시간 누구보다도 미야자키를 사랑해온 팬으로써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게되었는지는 짐작이 가기도 한다. 그의 이런 모순이 처음도 아니다. . 아니, 사실 미야자키의 우주 자체가 그렇다. 증기기관과 대자연이 공존하고 반전주의와 복엽기에 대한 낭만이 양립하는 그 거대한 자기모순 자체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예술가를 이루는 부속품 중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 그러나 미야자키는 그런 자기모순에 안주하는 작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거대한 간극을 긍정하며 간극 자체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었다. 그게 덜컹거리고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외면한 적은 없었다. . 근데 "바람이 분다"에서는... 그런 그의 태도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볼 때 미야자키 우주의 논리에서 지로는 포르코 보다도 시스템에 복무한 당사자다. . 그럼에도 영화는 그가 복무하는 시스템과 그를 둘러싼 세상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너무나 얄팍하고 게으르다. 영화 전체가 자기모순을 뭉게고 타협하려든다. 그래서 미야자키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 "바람이 분다"를 둔 반응을 두고 "미야자키는 붉은돼지처럼 지브리 반전주의 영화들과 비슷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고 이걸보고 미야자키를 비난하는 것은 국뽕이다"라는 식의 비평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절대 그렇게 묶일 수 있는 영화도 아니고 "늙은 예술가가 말년에 한번쯤 만들어보고 싶었을" 종류의 영화도 아니다. . 내게 "바람이 분다" 는 최초로 아름답지 않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이며 처음으로 사랑하지 않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다. . p.s - 장면장면의 연출력과 음향설계 만큼은 여전히 대가로서의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상을 현실처럼 그리던 작가가 현실을 가상화 시켜버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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