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모까모까

모까모까

5 years ag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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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영화 ・ 2002

평균 3.6

2021년 07월 04일에 봄

내가 이런 신파를 싫어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들여다보려 하진 않으면서, 언더독이란 이유 하나로 아름답다 열광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하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큰 고통을 인내하며, 얼마나 간절하게 소망해야 겨우 닿을수 있는지, 누군가에게 오지랖떨때는 그리 맵게 잘 패면서 왜 영화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즐겨야만, 함께해야만, 사랑해야만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시네마천국>을 보면,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감독이 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한 모든것을 버린채 돌아오지 말라 말한다. 그렇기에 토토가 수십년만에 마주하는 가장 사랑하는 순간을 이은 마지막 시퀀스가 우리에게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천국이 벗어날수 없는 지옥이라 일갈하는 소노 시온같은 이들도 있고, 나 역시 그에 동의하지만 말이다. 무언가 간절하다는건 거기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게더>는 과연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생각컨데 그 무엇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친부모의 유지에 따라 소년을 키웠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위안받아가는 그 과정이 없다면, 굳이 내 아이도 아닌데 그리 열정적으로 지원했을까? 그 과정에서 아이가 아버지의 진심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한 수준에 도달하려 노력했을까. 이 과정없이 그런 기회를 잡을 자격이 있을까? 이런 과정이 없다면 그저 아이에게 미련으로 계속 시키는 가족에 불과할 뿐이다. 손가락 부러지고나서야 피아노를 포기케 한 내 부모님이나, 그저 선생만 찾아다니는 초반부의 학부모처럼 말이다. 재능도 없이 막대한 기대에 내몰리는 아이의 감정이 뭔지도 모르면서(비록 소년에게는 재능이 있지만, 재능이 있다한들 노력없이 개화할수 있을까? 천재는 그냥 될꺼야라며 자연스레 받아들이는게 더 꼴뵈기 싫다.) 그저 아름답게만 그리려는 이런 영화가 내겐 역겹다. 그 세세한 심리조차 포착하지 못하면서, 왜 이를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신파라 이름 붙이는지도 이해가 안간다. 이런 의미로 신파라 불린다면 그건 오히려 <블랙스완>이나 <위플래시>를 칭해야한다. 무언가를 위해 나 자신까지 포기해서야 겨우 닿는다는게 얼마나 고혹적인가. 그저 시나리오상의 재능, 천재라는 몇 단어에 의존하여 그 노력이 아닌 이야기가 쁘띠하게 보이도록 집중하는데.. 과연 영화가 소년의 그 선율을 아름답게 담아낸것인지 반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