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urent
5 years ago

눈으로 만든 사람
평균 3.6
처음엔 진아씨, 라고 썼다. 지우고 다시 지나씨, 라고 썼다. 하지만 지나라고 부르자 아무 말도 써지지가 않았다. 내가 진아씨한테 갖고 있던 어떤 느낌도 살아나지 않았다. 세 살 윤이들을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같이 뛰던 사람, 잠들기 전에 한 번씩 내 집 쪽을 살펴봐주던 사람, 작은 쪽지 하나도 그냥 버리지 못하던 사람, 폭염과 태풍을 함께 겪은 사람이 진아이지 어떻게 지나란 말인가. 하지만 그 사람은 착한 모범생이던 시절에도 김팀장이던 시절에도 산모님이자 윤이 어머니일 때도 은행에서도 운전면허 시험장에서도 지나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나는 진아라고도 지나라고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진아씨한테 편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그런 채로 이 사람은 대체 뭔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진아씨 생각에 골몰하면서도 진아씨한테 연락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진아씨한테 시간을 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멈춰 서서 입술을 물었다. 그래,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그렇게 할게. 백번이고 할게. _<보내는 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