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드

메모리아
평균 3.6
처음 영화를 봤을 땐 극단적인 슬로우 시네마라는 걸 제외하곤 공간도 배우도 언어도 하나같이 기존 아핏차퐁의 영화와는 다른 이질적인 영화란 생각이 있었는데 영화가 어느 기점을 지나 다른 세상을 마주하면서 펼쳐지는 얘기들이나 장면들을 보면, 아 이런 영화는 결국 전세계에서 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겠구나 싶은 그만의 영상 언어와 인장으로 가득한, 이번에도 또 아핏차퐁의 진득한 영화 한 편이였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영화의 이야기는 어쩌면 굉장히 간단해 보입니다. 큰 굉음으로 고통받는 한 여성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걸 그린 영화, 정도로 요약할 수도 있을텐데 이에 붙는 수많은 말과 이미지가 상당히 난해하고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기도 합니다. 거기서 왜 차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는지, 왜 하늘을 길게 보여주는지, 심지어 이 영화에선 정확히 말을 할 순 없다만 갑자기 그 존재는 어디서 어떻게 왜 나왔는지 대체 설명이 되질 않으니 가뜩이나 어려운 얘기가 더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근데 제가 결국 아핏차퐁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 하면, 영화가 보여줄 수 없을 것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서 굉장히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기점을 기준으로 현실과 초현실, 도시와 자연, 이야기를 찾는 사람과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 사람, 기억을 찾아 연구하는 사람들과 기억의 집합체가 된 사람 등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영화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탁월한데 구조적으로도 정교하니 영화가 오락적으로 주는 쾌감은 없겠지만 미학적인 쾌감의 극한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기억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서, 시각적으로나 특히 청각적으로나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뭔가 싶다가도 나중에 가면 큰 울림이 됩니다. 다만 영화에서 가장 뜬금없이 나오는 그거는 사실 저한테는 뭔갈 보여줘야 한다는 데에서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였습니다. 예전 영화는 태국의 시대상이나 역사를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런 면이 덜해서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장면에 의미를 넣는 방식은 저는 굳이라는 생각이고, 왜 이렇게 느린가에 대해선 그냥 작가의 표현법 혹은 스타일이라는 생각이고, 왜 이렇게 하고자 하는 말을 빙글빙글 돌리나에 대해선 오히려 직접 얘기하지 않기에 생각할 수 있는 폭을 넓게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