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김현승

김현승

4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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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버니

영화 ・ 2003

평균 3.1

내 모든 제자리걸음의 중심에 위치한 당신, 그 중력. / [Kill the Screen] <브라운 버니>는 오토바이 레이스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느 레이싱 영화들과 다르게 카메라는 오토바이의 원운동을 건조하게 지켜볼 뿐이다. 스토리 전체와 연관 지어 본다면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운동의 회귀성이다. 로드무비의 형식을 따르는 <브라운 버니>의 모든 여정은 결국 ‘버드’(빈센트 갈로)가 복귀해야 할 원점을 보여주는 과정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원죄는 남자의 인생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아도, 꽃을 닮은 이름을 보아도 남자는 끝내 정착하지 못하고 떠남을 반복한다. 이때 그리운 이를 잊으려는 몸부림은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과 병치된다. 레이스 장면에서 오토바이는 폭발적인 속도로 도주하지만, 고작 원형의 트랙을 돌고 있는 77번 오토바이를 카메라는 손쉽게 따라잡는다. 오토바이 경주가 지쳐있는 버드의 모습으로 디졸브 될 때, 그의 첫 번째 탈주가 실패한 셈이다. 버드의 가장 극적인 탈주는 새하얀 소금길에서 이루어진다. 또다시 노란 오토바이를 탄 그는 이전 탈주의 한계를 깨달은 듯 직선 형태의 도주를 감행한다. 카메라는 황급히 도주하는 남자를 클로즈업하지만 그의 형태와 소리는 점이 되어 소멸한다. 빈센트 갈로는 PTA처럼 스크린 간, 또 스크린 내부에서의 색채 충돌을 자주 활용한다. 붉은(어쩌면 푸른 색도) 이미지가 반복되는 세계와 하얀 소금길을, 혹은 시꺼멓게 타버린 속을 대변하는 듯한 검은 밴과 하얀 배경을 대조한 이 장면이 각각의 경우에 부합한다. 색채 대비는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그가 택한 장소가 꼭 ‘소금길’이었어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에 훌륭한 답변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모든 준비에도 탈주는 또다시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점으로 소멸하는 그의 모습 뒤로 검은 밴이 화면을 향해 다가오는 씬이 봉합되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했던 버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는 스크린을 어지럽히는 효과들로 대체된다. 뚜렷한 형상을 망가뜨리는 스크린의 노이즈와 더불어 지저분한 앞 유리와 빗물 자국, 스크린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역광으로 암처리 된 얼굴 등이 대표적이다. 차 내부를 촬영한 씬에서 ‘드러나지 않는 얼굴’만큼 인물의 옆얼굴이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조수석에서 촬영한 듯한 카메라는 버드의 얼굴과 창밖의 세상을 동시에 향한다. 이때 꾸준히 자동차의 창문틀을 배제하는 프레임이 흥미롭다. 틀을 지운 채 버드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크게 잡기 때문에 스크린은 얼굴과 세상으로 양분된다. 따라서 빠르게 이동하는 바깥 배경과 정적인 버드의 얼굴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립하는 운동이미지로 인해 인물은 배경에서 ‘붕 뜨게’ 되고, 마치 바깥 세트만 바삐 움직이고 배우들은 자동차 안에 멈춰 있는 고전 영화의 'rear projection'을 보는 듯하다. 고전 세트장의 느낌은 인물과 배경을 대립시키면서도 동시에 창밖 세계의 운동을 ‘반복되는 세트장의 원운동’으로 전환한다. 이와 같은 주인공과 세상 사이의 이질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연장된다. 프레임을 멈추는 엔딩 장면은 원죄를 안은 채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도는 시간 속에 갇혀 버린 인물을 표상한다. 이 장면에서 프레임 프리즈와 함께 로즈를 만났을 때(이때도 원운동을 했다)처럼 화면 전체가 아웃포커스된다. 그리운 나의 프레임 안에서도, 프레임을 벗어나서도 온전한 삶은 없다. / 데이지 시퀀스의 촉감 이미지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