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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오세일

1 year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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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 산책하는 침략자 극장판

영화 ・ 2017

평균 3.5

여전히 기요시스러운 인장이 가득한 미장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커튼과 열린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공장의 소음, 빈 공간을 훑으며 유령성을 강조하는 카메라와 물을 흡수하여 색이 바랜 벽지와 같은 이미지의 색감까지.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기요시는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SF 마저 탁월하게 다룰 줄 안다는 점이다. 이미 그러한 생각은 질리도록 하고 있었지만, <예조>까지 보고 나니 이제는 확실히 그를 장르, 숏, 공간의 달인으로서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또다시) 왔구나 싶었다. 무언의 미스터리로 시작하여 공장이라는 공간에서의 마무리로 귀결되는 기요시의 작품들은, 몇 번을 봐도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도쿄 소나타>에서는 가족, 그리고 <크리피>에서는 이웃 간의 관계에 대한 균열을 다루었다면, <예조>에서는 어떠한 정제된 형태에서 벗어나 인류가 머금고 있는 삶의 '개념' 자체에 접근한다. 가족, 자존감, 과거, 미래, 목숨이라는 개념을 경유하여 끝내 도달하게 된 공포라는 감정. 하지만 외계인들은 공포의 감정을 빼앗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인간의 모든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공포이기 때문이었을까. 공포 덕분에 인간들은 욕구를 억제하고,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인류는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공포라는 감정에 대항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시한다. 공포에 지배당한 존재는 영원히 수동적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지만, 공포를 넘어선 사랑을 하는 이들은 개인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인류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그 결심이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핵심 역할이 되지만, 여전히 지구에는 사랑을 짓누르는 공포가 득실거린다. 그렇기에 인류는 외계인의 침공을 끝내 막을 수 없게 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타츠오처럼 공포에 두려워하며 욱씬거리는 손목을 부여잡는 것뿐.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려는 이유는 단지 인간들의 감정이 궁금해서였을까. 기요시의 세계에 의하면, 외계인들은 그저 인류를 위협하는 수많은 질병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단지 그러한 질병이 실체화되었을 뿐. 기요시의 영화들은 언제나 의도된 비개연성의 연속이다. 개연 대신 정서가 앞서고, 설명보다 행위가 앞선다. 마치 아무런 경고도 없이 일상을 잠식하는 역병처럼. 그렇기에 <예조> 또한 기요시의 정신적 시리즈 중 하나로써 기능하며, 그의 현대인들에 대한 고찰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