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탄
4 years ago
읽고싶어요

토성의 고리
평균 4.1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고 그 위에 사유를 쌓는 과정의 에세이로 보이지만 그 사유탑이 향하는 곳 혹은 사유탑의 형태는 픽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뒤늦게 깨닫게 하는 서술들에 완전히 매혹된다면 누구나 며칠을 아껴 읽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제발트식 미학의 핵심으로 보이는 건, 역사 속에 매몰된 이름들이 픽션일지도 모르는 서술 과정에서 호명되며 다시 지면 위로 떠오른다는 사실인데, 그 활자에 내재된 그득한 노스탤지어가 어떤 독자라도 정신 못 차릴 지경에 이르게 한다. 제목인 토성은 기호로서 벤야민을 떠올리게 하고 작 중 화자가 행하는 대다수의 행위인 도보 여행은 그런 이미지를 강화시키는데 결국 책을 다 읽은 내 뇌리에 강력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인척 하나 없는 쓸쓸한 해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뼈가지들을 힐긋 돌아보는 벤야민과 허공 위에서 절대적인 시선이 포착했을, 해변의 버즈 아이 뷰가 보여주는 무작위적인 무늬가 그린 띠의 아름다움이었다. 언젠가 파도가 휩쓸어 아름다움은 궤멸하겠지만 파괴의 궤적조차 아름다움의 잔향을 남길테고 이런 작품이 존재하는 한 옅어지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