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석

에스퍼의 빛
평균 2.7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창 아이돌 덕질할 때 팬픽 쓰는 것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카카오스토리 기반 멤놀이나 RP가 가미된 릴레이 소설 커뮤니티를 만난 것도 아마 그 때 즈음 일 것이다. 특히 후자의 커뮤니티 경우는 매우 특이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각자 가상의 직업과 인물을 정하여 (가령 뉴진스 하니가 아닌 사진작가 하니와 같은) 각자 게시물을 쓰고 다른 구성원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허구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구조였다. 그 흥미로운 구조 안에서 나는 새로운 순간들을 경험했다. 다만, 이게 온라인 문화에 대한 비평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되고 싶은 나’ 혹은 ‘되지 못할 나’를 향한 도피인 것은 아니었다. 대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구조가 담보하는 무한한 가능성, 또 서로의 시나리오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며 스크린 밖 현실과는 유리된 채 박동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그 생경하지만 어딘가 벅차오르는 감각이 초등학교 고학년 김병석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환시라고 치부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 글을 쓰는 나에게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사실, 흑역사랍시고 기억 저편에 밀어둔 것도 사실이었다. 영화 <에스퍼의 빛, 2024>은 그런 어린 시절의 나를 대뜸 내 앞에 데려다 놓은 작품이었다. 각자의 자캐를 앞세워 (아마 영화의 제작진일) 메인 계정의 타래를 이어가는 트위터 기반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허구적 서사의 주요 축으로 사용하는 이 영화는, 스마트폰을 잡고 게시물 타이핑을 하는 십 대 아이들의 모습과 그들이 만들어낸 판타지 서사를 병치한다. 빈약한 프로덕션 디자인, 다소 구시대적인 사운드 이펙트, 혹은 엉망진창인 배우들의 연기 등 영화가 만들어낸 아이들의 상상은 조잡하기 그지없는 결과물로 관객 앞에 당도한다. 하지만, 그렇게 조악하기에 영화는 자신의 허구성이, 또 아이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지금-여기에 발붙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십 대들의 특이한 온라인 사용에 관한 사회문화적 탐구 혹은 극에 대한 몰입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이 작품은 아이들의 게시물들이, 또 영화의 방황이 스크린 밖 현실에 관한 미학적 무릎반사임을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성세대가 종종 예단하곤 하는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을 향한 도피적 망상’은 절대 아닌 셈이다. 그리고, ’리산 시티’니 ‘이능력’이니 영화에서 반복되는 유치찬란한 명사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띈다. 목전에 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그들만의 수사학, 변해가는 자신과 환경을 제 나름대로 포용하기 위해 축조한 대안적인 언어.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세계는 단지 다른 단어들로 묘사한 이 세계였을 뿐이다. 더욱이, 제작진이 아이들에게 세계관에 관한 전체적인 설정을 제공하고 서사적 분기점에 관한 몇 가지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커뮤니티의 전제를 고려하면, 어떤 딜레마가 전지적 존재에 의해 선제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트위터 속 세계나 그들이 당장 밟고 있는 현실이나 아이들에게는 똑같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화면 속 아스라한 텍스트로만 남는 이능력자들의 세계에서 오감의 세계의 파편을 경험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관계 맺으며 이타적 사랑으로 향한다. 극 후반부의 첨예한 갈등이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 환멸로 이어지기 직전, 한 소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은 우정을 믿는다고 말한다. 흔들리는 다른 아이들의 눈동자들. 이윽고, 한 가지 소원만을 들어준다는 세계수 앞에서 남아 있는 인물 모두는 같은 소원을 이야기한다. 모든 존재들이 각자의 생을 자유로이 살아가게 해달라는 바람. 이어, 동화 같은 해피 엔딩을 서술하는 메인 계정의 트윗. 분명 얼굴도 실명도 모르는 한 소녀의 미성숙한 문장이, 그 안에 스민 진심이 타인에게 닿았다. 그 지점에서 아이들은, 또 영화는 매번 질문만을 던지는 세상 앞에 가장 뚜렷한 답은 서로를 맞잡은 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회를 해체하여 오류를 짚어내기보다, 사랑하는 법을 목격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다. 어쩌면 영화도 십대들의 트위터 커뮤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느슨하게 생각해 본다. 얼굴만 바꿔가며 찾아오는 동시대적 의제를 이해하기 위해 얼기설기 쌓아 올린 쇼트들, 서로 다른 창작자의 언어와 페이스로 여기 당도하는 씬들, 그리고 스크린을 초월하여 관객들에게 내민 손. 닿았을까, 끝내 고민하는 롤링 크래딧 속 어떤 이름들. 두 시간 동안 지속되는 유치찬란한 연서. 그들의 영화는 누군가에게 닿았을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계정에 방치된 내 글은 누군가에게 닿았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혐오와 무지의 시대, 저기 멀리 있는 타인에게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