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Laurent

Laurent

8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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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영화 ・ 2017

평균 3.8

요리를 잘하고, 뜨개질이 취미이며, 파스텔 계열의 옷을 즐겨입고, 사근사근한 말투를 가진 린코짱은 트랜스젠더라는 성소수자임을 제하고 논한다면 지극히 전통적인 모성의 형태를 지닌다. ‘바람직한 모성’이나 ‘조신한 여성’을 트랜스젠더의 얼굴로 강요하는 진보적 보수영화인가 보는 내내 의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진짜 여성이란 건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특정 여성성이라는 건 존재하나, 성전환이라는 대수술 이후에도 고루한 성역할은 답습되는 것일까. 사실 린코짱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감히 내가 손가락질 해서도, 연민을 던져서도 안 되는, 지극히 나와 같은 개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회와 개인 간의 관계’ 선상에서 볼 때 이따금 날 상념에 젖게 만드는 그룹이기는 하다. 하지만, 세 가족이 진심을 담아 엮은 ‘번뇌’들이 공중에서 즐겁게 날아다니는 장면은 내 모든 고민들을 잊히도록 만들었다. 웃고 있는 가족에게서 행복만이 느껴졌다. 잘라낸 성기를 상징하는 뜨개질감은 단순히 린코짱만의 번뇌가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와 세간의 가치가 늘 합치될 순 없는 우리 모두가 지닌 번뇌다. 토모와 외삼촌, 린코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108개의 ‘번뇌’들을 모아 불태웠다. 그걸 보자니 내 번뇌 하나쯤 함께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넌 누군가를 대신할 수 없어, 넌 아무것도 될 수 없어 수군거리는 사회를 딛고 올라서게 해주는 사람. 토모에게 린코가 있다면, 린코에겐 ‘가슴이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브래지어를 사온 엄마가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토모 엄마의 가출은 단순히 연애 대상을 찾는 행위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밖으로 나도는 아빠, 외로운 뜨개질만 하던 엄마에게서 안타까움과 결핍만을 느낀 채 정작 필요한 도움은 얻지 못 하고 자라난 결과다. 여자치고는 손이 크다, 이상한 사람이다, 변태다, 호적 상으로는 남자다 무수한 지적을 받는 린코가 여전히 불행할 거라 생각한다면, 선선한 아침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린코의 얼굴이 충분하게 답변을 해줄 것이다. 자신에 대한 확신은 이렇듯 삶의 중요한 버팀목이다. 앞으로 토모는 린코가 뜨개질로 만들어준 ‘가짜 가슴’을 큰 위로로 삼아 더욱 쑥쑥 커가겠지. 이제는 토모가 엄마옷에 얼굴을 묻고 우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