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신용규

신용규

7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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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영화 ・ 1986

평균 3.9

그냥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유치한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상당히 많은 분량의 롱테이크를 담고 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의 말처럼 이러한 시도는 감독의 편집된 사고를 관객에게 주입하는 폭력이 배재되고, 관객 스스로가 상황을 주의 깊게 그리고 자유롭게 들여다 보고 상상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 영화의 시작은 마태수난곡 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배경으로 다빈치의 '세 왕의 찬미'라는 미술작품을 롱테이크로 보여 줍니다. 이 오프닝이 이 영화의 사실상 주제라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 주인공 알렉산더가 아들인 고센에게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일화를 얘기해 주는 씬에서 우체부 오토가 등장하는 씬까지 또 롱테이크로 보여줍니다. 오토가 편지를 읽어주면서 질문한 "신을 믿으세요?"부터 오토가 떠나면서 말한 "믿으라 그러면 얻으리라"까지의 이야기 소재는 윤회론과 유신론입니다. 그리고 오토의 직업이 우체부라는 설정은 영화의 주요한 키워드가 됩니다. ... 어린 아들인 고센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한동안 말을 못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인 알렉산더의 독백같은 일방향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너는 말을 못하는구나. 작은 물고기처럼"으로 시작된 대화는 세상을 향한 넋두리 섞인 큰 염려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이렇게 되뇌입니다. "인류도 위험한 길에 들어 섰구나"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구소련의 정치적 상황을 은유한 것으로 보이고, 의사인 빅터를 만나서도 이 대화는 이어집니다. "말을 못하니 힘들지? 그렇지만 너한테는 좋은 일이란다. 말해봐야 득 될 게 없는 세상이니까." ... 알렉산더는 죽음과 집(고센이 이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이 이집트에 정착한 고센땅에서 유래된 이름 같아 보입니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인류문명과 기술적 진보에 대해 회의적인 언급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정신과 물질이 부조화된 '죄악 위의 문명'이라 부릅니다. 그는 실천없는 말,말,말들에 지겹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 이때 고센이 넘어져 다쳐 피를 흘리고 이 장면은 전쟁의 폐허로 바로 이어집니다. 고센은 인류가 곧 닥칠 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자신의 아들인 앤드루사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듯이, 이 영화는 고센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시선이니까요. ... 집으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빅터가 준 성화집을 보며, 종교적인 순수성을 발견하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도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세상이 되었지" 이 대사는 복선이 됩니다. ... 이 영화에서 마리아는 성경에 나오는 두 명의 마리아의 모습을 모두 보입니다. 우선은 다빈치의 작품속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상징하지만, 또한 나사로의 여동생이자 마르다의 언니인 마리아의 모습도 보입니다. ... 이후, 연극무대같이 꾸며진 집안의 내부에서 "희생이 없으면 선물이 아니죠", "저는 수집가 입니다. 설명이 안되는 이야기들의..."라는 오토의 연극같은 대사가 이어지고, 배우가 카메라(=세상)를 등지는 과감한 화면 언어 속에서 전쟁이 발발합니다. ... 전쟁의 표현 방식 또한 연극적입니다. 무대밖으로 전투기의 소음이 들리고, 가구가 흔들리고, 우유병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지는 효과로 전쟁을 묘사합니다. 우유는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상징하는 것인데,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바닥에 처참하게 깨져 엎어진 우유를 통해 더 큰 절망을 표현합니다. ...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무신론자였던 알렉산더의 마음에는 종교심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복선으로 이어질 기도를 시작합니다. 주기도문으로 시작된 알렉산더의 기도는 이 암울한 세대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다 포기하겠다고, 사랑하는 가족이든, 아들이든, 벙어리가 되든, 자기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포기하겠다는 약속까지 지키겠다는 기도로 마칩니다. ... 기도를 마치고 비몽사몽인 한밤중에 오토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가 마리아와 동침을 하면 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 과연 알렉산더는 우체부(=메신져) 오토의 '설명이 안되는 이야기'를 기도응답으로 받아 들이고, 본인이 기도한 그 약속을 다 지킬까요? ... 이야기의 결말은 여백으로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