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김재권

김재권

3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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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규칙

영화 ・ 1939

평균 3.7

한바탕 열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스포일러 포함. ​ 규칙이란 따라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악기를 연주할 때의 리듬과 같다.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될 때 연주자들은 정해진 리듬을 공유해야 하고 따라야 한다. 어째서? 연주가 게임이라고 한다면, 게임의 목적은 리듬에 맞춰 조화로운 연주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에 참여하는 자라면 게임의 목적을 따라야 한다. 그게 싫다면 악기를 내려놓고 무대 아래로 사뿐사뿐 내려가야 한다. 규칙은 무언가를 제한하거나 속박한다. 말하자면 특정한 틀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참여자들로 하여금 그 안으로만 통과하도록 만든다. 악기 연주자라면 일정 시간마다 돌아오는 박자에 자신의 연주를 맞추어야 하고, 축구장에 들어선 선수라면 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규칙을 지킬 기분이 아니라면? 그런 것은 상관없다. 규칙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주어진다. 게임의 목적이 달성되기 위해서 규칙은 엄격히 지켜져야 하므로. <게임의 규칙>에서는 두 계층이 존재한다. 귀족 계층과 하인 계층. 신분의 규칙은 상당히 간단하다. 윗사람이 시키면 아랫사람이 하면 된다. 윗사람을 위해 아랫사람이 존재한다. 리젯은 여주인 크리스틴의 시종을 들고 손님의 식사를 준비한다. 슈마셰를 비롯한 꼴리니에 영지의 군인들은 영지를 수호하며, 새로 하인이 된 마르소는 귀족들의 구두를 닦는다. 사냥 시즌에 하인 일동은 토끼와 꿩을 몰고 귀족 일동은 총을 쏜다. 또한 주인은 하인을 해고할 수도 있다. 영화의 막바지에 슈마셰와 마르소는 소동의 책임을 물어 해고된다. 일상(신분의 게임)에서는 신분의 규칙이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또 다른 게임, 바로 사랑의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신분의 규칙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랑의 욕망이 표출되는 무도회에서는 신분의 규칙보다 사랑의 규칙이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슈마셰는 고귀한 손님들이 있음에도 여기저기 총을 발사하며 돌아다니고, 쥐리오 앙드레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과 주먹다짐을 한다. 하인인 마르소는 손님들 틈으로 숨거나 자신의 주인에게 망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옥타브는 자신의 사회적 처지를 잊은 채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무도회의 열기 때문에 더 극적이고 표면적인 상황들이 발생했지만, 사실 위와 같은 사랑의 게임은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이미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로베르는 주느비에브와 오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리젯은 타인이 없는 공간에서는 옥타브나 마르소와 종종 치근덕댔다. 크리스틴 또한 앙드레의 비행 이전에 앙드레와 우정을 나누었다. 말하자면 일상-1이 신분의 게임이라면, 한 꺼풀 아래의 일상-2에서는 사랑의 게임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게임에 적용되는 규칙은 무엇일까? 영화 속의 인물들은 사랑의 게임에 참여할 때 모두 어느 정도 표리부동한 면모를 보이는데 그것은 그들이 사랑의 게임에 적용되는 규칙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로베르는 아내 몰래 주느비에브를 만나고, 옥타브는 아닌 척하지만 크리스틴에 대한 연정을 가지고, 크리스틴은 로베르의 바람을 알게 된 이후 오히려 기뻐하며 자신의 욕망에 더 솔직해지며, 리젯 또한 남편이 없는 곳에서는 다른 남자들과 치근덕댄다. 사랑의 게임에 적용되는 규칙은 안과 밖, 배우자와 연인을 구분하는 것이다. 슈마셰를 피해 다니는 마르소와 마르소를 쫓아다니는 슈마셰의 소동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실패의 예시로서 사랑의 규칙을 증명하는 것이다. 안과 밖, 배우자와 연인이 만났을 때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즉 규칙을 지키지 못한 불이익으로서의 예가 되어준다. 또 하나는 귀족들의 사랑의 게임과 하인들의 사랑의 게임이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귀족들은 배우자의 바람을 알게 되어도 슈마셰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람난 상대에게 분노하며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자의 또 다른 사랑을 인정해주고 자신의 또 다른 사랑을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앙드레는 왜 죽어야 했을까? 그 이유는 앙드레가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옥타브는 최후의 순간에 선을 넘지 않았다. 사랑의 게임을 일상의 게임으로 가지고 나오는 선택을 하지 않았기에 사고를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앙드레는 처음부터 두 게임을 하나로 합치려고 했고, 통용되는 사랑의 규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얻고자 하는 시도는 어떤 관점에서는 영웅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참여하고 있던 게임은 그런 게임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다. 목적을 향해 돌파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비행기 운전이라는 게임에서는 성공하여 영웅이자 혁명가가 되었지만, 인간 사회라는 게임에서는 결국 실패로 끝나 죽음까지 맞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사랑의 게임이라는 게임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바탕 사냥이 끝난 후의 텅 빈 들판처럼, 휘황찬란하고 열정적이었던 소란 끝에 그저 불운한 ‘사고’로 적당히 마무리될 뿐인 앙드레의 죽음은, 사랑의 게임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은 아주 공허한 것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