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소루

아버지의 해방일지
평균 3.9
내 외증조부는 월북자다. 외할아버지(이하 할아버지)가 세 네살 때쯤 북한군으로 참전하기 위해 처자식도, 대궐 같은 집도 버리고 떠났다. (당시 예천에서 놋그릇 공장을 운영해 꽤 잘 살았다는 나의 외갓집..) 그 덕에 할아버지는 출세길이 막혔다. 대기업에 지원하면 최종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엄마가 다섯 살 때 할아버지는 취업을 포기하고 귀향했다. 가족을 버리고 이념을 택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겼다.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인텔리는 살 길을 모색하는 대신 절망했다.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잘만 돌아가는 세상을 맨 정신으론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혈기왕성하던 청년시절부터 죽는 날까지 술을 마셨다. 달리 할 것도 없었다. 늘 취해있었고 술에 취하면 아내와 자식들을 때렸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막내 삼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병들어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왔다. 증조 할머니가 죽자 시골에 혼자 남겨져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반복하던 할아버지가 내 부모 손에 이끌려 서울로 왔을 때, 우리 집 작은 방에 틀어박혀 죄수처럼 살아갈 때, 나는 할아버지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와 이모들이 증언한 시간 속 할아버지는 악인이었다. 지금은 늙고 병들어 연약한 모습으로 그 시간을 속죄하듯 사는 게 싫었다. 그들이 겪은 폭력은 분명한데 그 사실을 반증하듯 할아버지를 애틋해 하는 엄마와 이모들의 태도도 못마땅했다. 친구들과 동네를 거닐다 행려병자 같은 차림으로 술냄새를 풍기는 할아버지를 마주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 시선을 피했다. 나한테 저런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전전긍긍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이 된 해에 술에 취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어 죽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평생을 술에 헌납한 그였기에 모두가 납득할만한 사고였다. 사회생활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은 내 부모의 지인들로 붐볐다. 익숙한 사람들 틈으로 시골에서 온 할머니 한 명이 나타났다. 할아버지의 여동생이었다. 고모할머니는 엄마와 이모들을 끌어 안고 한바탕 울었다. “고생했다.” 평생 상처만 준 아버지를 감당해 온 자식들에게 한 말이었다. 이로써 할아버지 때문에 노심초사 하던 나의 불안감도 영영 사라졌다. 구성맞은 내 외갓집의 가정사를 따라가면 북한으로 떠나버린 외증조부가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엄마의 유년시절과 중학생이던 내가 감당해야 했던 불안감이 한국 현대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평생 ‘월북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간 내 할아버지는 그의 자식들에게도 ‘가정폭력’이라는 낙인을 남겼다. 나는 그 낙인이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삼촌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을 보았다. 70년 전 외증조부의 선택이 낳은 고통이, 얼굴을 바꿔 가며 대물림된 셈이다. 연좌제는 1980년 법적으로 폐지됐다. 법이 바뀌었다 한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한 길이었겠으나 그 앞에 놓인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여전히 원망스럽다. 그럼에도 시간은 잘도 흘렀다. 엄마는 무사히 성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고 나와 내 동생을 낳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죽고 없다. 연좌제니 월북이니 빨치산이니 하는 얘기는 역사책에 나오는 일들이 됐다. 그러나 나 역시 그 낙인의 대물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할아버지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그가 남긴 유산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엄마와 함께 하고 있으므로. 어쨌거나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는 어떤 식으로든 오늘의 개인들과 연관돼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방에 촛불을 켜놓고 라디오를 듣던 모습이 떠오른다. 술냄새와 홀애비 냄새가 뒤섞여 꿉꿉했던 공기도. 반쯤 취한 채 내게 “멜랑꼴리”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묻던 할아버지도. ‘작은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구례 사람들을 보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뒤늦게 아쉽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했을까. 보고 싶진 않았을까.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