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의 말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소설
268p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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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새삼스럽게 경탄스럽다!
압도적인 몰입감, 가슴 먹먹한 감동
정지아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온기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랑
그 안에서 발견하는 끝끝내 강인한 우리의 인생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시트콤 같은 일화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38면)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면)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면)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빨치산의 딸, 한국문학의 딸로”
정지아라는 센세이션
32년 전 정지아의 등장은 한국문학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판매금지와 공안 당국의 기소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핍진한 서술과 역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제 정지아는 그 태도에 더해 사실과 허구를 섞어가며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관록과,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손을 꼭 붙들어놓는 대가의 면모까지 갖추었다. 32년 만에 내놓는 이 소설로 정지아가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증명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의 귀하디귀한 딸”(소설가 김미월)이 되었다는 말에,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한소루
4.5
내 외증조부는 월북자다. 외할아버지(이하 할아버지)가 세 네살 때쯤 북한군으로 참전하기 위해 처자식도, 대궐 같은 집도 버리고 떠났다. (당시 예천에서 놋그릇 공장을 운영해 꽤 잘 살았다는 나의 외갓집..) 그 덕에 할아버지는 출세길이 막혔다. 대기업에 지원하면 최종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엄마가 다섯 살 때 할아버지는 취업을 포기하고 귀향했다. 가족을 버리고 이념을 택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겼다.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인텔리는 살 길을 모색하는 대신 절망했다.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잘만 돌아가는 세상을 맨 정신으론 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혈기왕성하던 청년시절부터 죽는 날까지 술을 마셨다. 달리 할 것도 없었다. 늘 취해있었고 술에 취하면 아내와 자식들을 때렸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막내 삼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병들어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우리 집으로 왔다. 증조 할머니가 죽자 시골에 혼자 남겨져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반복하던 할아버지가 내 부모 손에 이끌려 서울로 왔을 때, 우리 집 작은 방에 틀어박혀 죄수처럼 살아갈 때, 나는 할아버지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와 이모들이 증언한 시간 속 할아버지는 악인이었다. 지금은 늙고 병들어 연약한 모습으로 그 시간을 속죄하듯 사는 게 싫었다. 그들이 겪은 폭력은 분명한데 그 사실을 반증하듯 할아버지를 애틋해 하는 엄마와 이모들의 태도도 못마땅했다. 친구들과 동네를 거닐다 행려병자 같은 차림으로 술냄새를 풍기는 할아버지를 마주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 시선을 피했다. 나한테 저런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전전긍긍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스무 살이 된 해에 술에 취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어 죽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평생을 술에 헌납한 그였기에 모두가 납득할만한 사고였다. 사회생활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은 내 부모의 지인들로 붐볐다. 익숙한 사람들 틈으로 시골에서 온 할머니 한 명이 나타났다. 할아버지의 여동생이었다. 고모할머니는 엄마와 이모들을 끌어 안고 한바탕 울었다. “고생했다.” 평생 상처만 준 아버지를 감당해 온 자식들에게 한 말이었다. 이로써 할아버지 때문에 노심초사 하던 나의 불안감도 영영 사라졌다. 구성맞은 내 외갓집의 가정사를 따라가면 북한으로 떠나버린 외증조부가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엄마의 유년시절과 중학생이던 내가 감당해야 했던 불안감이 한국 현대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평생 ‘월북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간 내 할아버지는 그의 자식들에게도 ‘가정폭력’이라는 낙인을 남겼다. 나는 그 낙인이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삼촌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을 보았다. 70년 전 외증조부의 선택이 낳은 고통이, 얼굴을 바꿔 가며 대물림된 셈이다. 연좌제는 1980년 법적으로 폐지됐다. 법이 바뀌었다 한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한 길이었겠으나 그 앞에 놓인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여전히 원망스럽다. 그럼에도 시간은 잘도 흘렀다. 엄마는 무사히 성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고 나와 내 동생을 낳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죽고 없다. 연좌제니 월북이니 빨치산이니 하는 얘기는 역사책에 나오는 일들이 됐다. 그러나 나 역시 그 낙인의 대물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할아버지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그가 남긴 유산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엄마와 함께 하고 있으므로. 어쨌거나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는 어떤 식으로든 오늘의 개인들과 연관돼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방에 촛불을 켜놓고 라디오를 듣던 모습이 떠오른다. 술냄새와 홀애비 냄새가 뒤섞여 꿉꿉했던 공기도. 반쯤 취한 채 내게 “멜랑꼴리”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묻던 할아버지도. ‘작은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구례 사람들을 보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뒤늦게 아쉽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했을까. 보고 싶진 않았을까.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다.
COZYBOY
4.0
빨갱이라 불리던 사람은 결국 죽어서 모든 색을 가진 흰 가루가 되었네
권혜정
4.0
이데올로기가 종말한 시대에 신념에 의해 행동한 사람을 바라보며 지어지는 슬픈 웃음. @알릴레오북‘s 85회
134340
3.0
여지껏 내 맘대로 산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단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네
최승필
5.0
작년 연말에 우연히 연달아 읽었던 3권의 소설을 연휴중에 정리하고 싶어져서..세번째 독서메모.. <소년이 온다> (한강, 2014) <철도원 삼대> (황석영, 2020)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2022).. 소설가 정지아는 실제로 ‘빨치산의 딸’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자전소설인 셈이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상황임에도 소설의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기까지 해서 당혹스럽지만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친척분들의 전라도 사투리를 자주 듣고 자란 나로선 활자화된 사투리들이 실제 귀에 들리는 듯해서 그 감칠맛 나는 리듬감이 정겨웠다.. 하지만 작가 정지아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땅에서 빨치산 가족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가족만의 이야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론 자식의 삶까지 지배하게 되는 이 땅 모두의 아픔과 상처일 수밖에 없다.. 작가 정지아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이 땅의 갈라진 상처를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갈라진 것은 이데올로기일 뿐, 사실 사람들은 갈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빨치산 아버지의 삶의 태도였음을 깨닫는다.. 진영논리가 여전히 이 땅의 업보처럼 작동하고 있지만, 정지아의 빨치산 아버지는 선구자의 삶으로 이 땅을 향해 진정한 해방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갖고 살더라도 서로 증오하거나 배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정지아는 자기가 그랬듯 더 늦기 전에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들으라고 이 세상을 향해 조용한 귓속말처럼 권유한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 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작가의 말’ 중에서) 덧) ‘작가의 말’을 보는 순간 흠칫 놀랐다..내 마음이 그대로 적혀 있어서..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므로.”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작가의 말’ 중에서)
김농롱
5.0
모든 사람들이 별점 5개 줬을 줄 알았는데… 왓챠 평점 보고 놀랐다. 이보다 더 무난하게 잘 쓰는 게 가능쓰한가? 나는 이거 읽다가 기차에서 울고 지하철 기다리면서 눈물 뚝뚝 떨어뜨렸는데..(마스크 써서 다행쓰) 오늘도 너무나도 신비로운 취향의 세계 +나는 요즘 하도 잘 처울어서 이제는 “나 이거 읽다 울었다”는 말에 내 친구들은 ’그러셨겠지…‘하는 반응… 흑
붉은 돼지
4.0
1. <빅피쉬> 한국 근대사 버전. 2. 글 참 잘 쓰신다.
sean park
2.0
삼일 동안의 눈을 뜨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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