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미인

나이트메어 앨리
평균 3.6
노인은 조악한 십자가와 이름 1831~1899 생몰연도가 그려진 문신을 보여주었다. 이게 내 아버지의 무덤인 셈이지. 아버지가 이 문신을 보고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 그 놈이 아직 살아있을 때 이걸 새겼거든. 불에 타죽었는지 얼어 죽은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알았으면 밑에다가 사인도 박아 넣었을 건데. 허풍선이 노인은 취해 있었다.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떤가. 노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열어 잘린 귀를 보여주었다. 운 좋게 총알이 뇌를 비켜갔지. 참전하셨었나요? 비슷하네 결혼을 했었지. 부인이 쐈나요? 거의 다 왔군. 마누라가 사주한 거네. 흔한 얘기지 않습니까? 내연남한테 총 맞는 소설은 이제 팔리지 않을 텐데요. 내연남이 아니라 마누라의 내연녀라면 어떤가. 구미가 당겼다. 내가 평생을 돌이켜 봤는데. 이거 말곤 말이 되는 게 없더라고. 마누라가 통화하는 걸 부스 밖에서 엿들은 적이 있는데 말이야. 당신을 죽여달라고요? 아니. 놓고 간 장갑을 돌려주고 싶다는 전화였어. 네? 날 쏜 여자가 든 핸드백이 아주 작았거든. 장갑은 고사하고 총 한 자루가 겨우 들어갈만한 가방이었단 말일세.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어차피 자네가 각색할 텐데 뭐가 대수인가. 이 이야기를 쓸 거라 어떻게 확신하시죠? 몸에 묘비를 새긴 노인은 환하게 웃었다. 난 독심술을 하거든. 늙은이에게 버번 한 잔을 더 사주었다. 그는 유랑 서커스단에 관한 엉터리 소문들을 계속 떠들었고 나는 레즈비언 소설에 어울릴만한 필명을 궁리했다. 1951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