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케이크

케이크

6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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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히어런트 바이스

영화 ・ 2014

평균 3.5

약쟁이 히피 탐정의 기묘한 모험. PTA 미치광이 로맨스 삼부작 : Punch Drunk Love, Inherent Vice, Phantom Thread 1. Inherent Vice는 타고난 연약한 성질 때문에 해상 보험 적용이 안되어 배에 실을 수 없는 물건들을 말한다. Eggs break, Chocolate melts, Glass shatters. 인간으로 치면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없는 부류들. 타고난 반골 기질. 쉽사리 휘발되는 것들에 대한 예찬. 역설적으로 두 히피 커플을 무사 귀환하게 하는 히피의 고유 하자들. 2. 작은 대사 하나 하나가 퍼즐 조각처럼 짜맞추어 지면서 입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데, 한 눈에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지만 점점 그 장엄한을 느끼게 되는 거대한 건축물을 거닐다 온 것 같다. 그리고 더 대단한 것은 그 건축물이 헤로인 연기로 만들어진 신기루일지도 모르겠다는 점을 뒷견에 멤돌게 하는 그 마법같은 신비로움이다. 보르헤스의 소설에 대한 나브코프의 유명한 비평문을 떠오르게 한다. '거대한 건축물을 구경하고 밖을 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고개를 돌아보니 뒤에 아무 것도 없었다.' 3. 세밀한 복선들. 예를 들어, 극초반에 Doc이 빅풋에게 끌려 갔을 때, 어딘가 반쯤 맛이 간 거 같아 보이는 어설픈 변호사(델 토로 역)에게 하는 빅풋의 대사 "Doesn't have much to do with your specialty, which i understand, marine law?"("이 봐라, 니 해양법으로 밥 먹고 사는 변호사 이 사건에 뭔 상관이가?") "야레 야레, 바다에서도 많은 범죄들이 일어난다구~" 같은 대화는 은근한 웃음을 유발하는 드립거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배로 마약과 여성들을 밀수입하는 범죄 집단 골든펭에 대한 복선이다. 마찬가지로 코이 부인의 이빨도 골든펭의 정체에 대한 기깔나는 단서이자 복선으로써 착실하게 회수하는데, 결코 인과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4. 맥거핀이라 불리는 극작술을 가장 훌륭하게 구사한 사례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영화. 5. 정상적으로 보였던 사람들이 미치광이들로 보이고, 히피들이 점점 정상적으로 보이는 순간이 이 영화의 백미. 미국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수직 결합된 (Vertically Incorporated) 정신병동 비즈니스, 즉 정신병자를 직접 생산해서 돈을 벌고, 동시에 정신병자를 직접 치료해서 돈을 버는 산업 복합체라고 말한다. (Inherent Vice나 Vertical Incorporate이나 모두 비문학적인 법률 비즈니스 용어들인데 그런 용어들을 문학적인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 수직 구조가 이 영화에서는 여러 차원으로 얽기 설기 뻗어 있다. 6. 지극히 노멀한 남성으로 보였던 빅풋 역시도 마찬가지로 파트너를 잃은 PTSD에 시달리고 있는 정신병 환자다. 그 후유증으로 초콜렛이 발라진 바나나를 습관적으로 빨아 먹는데, 이는 극우 단체에 살해를 당한 빅풋의 파트너가 흑인이었음을 암시하고, 빅풋 아내에게 심한 구박을 받는 씬은 어쩌면 빅풋이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점까지 암시한다. 약을 한사바리 우적우적 씹어먹고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인물은 누구보다도 빅풋일지도 모른다. 7. 에서 묘사되었던 LAPD의 생활상들. 마치 연예인처럼 언론 매체의 노출에 신경쓰고, High-profile 사건에 집착하고, 재연 프로그램에 배우로 출연하는 등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묘하게 빅풋이 헐리우드 스타 같은 느낌을 준다. Real Estate 광고에서의 빅풋이 이 영화에서 첫번째 등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FBI 요원들과의 면담에서도 '내가 당신들 에피소드 몇 편을 놓쳤죠?)라고 비꼰다. 실제의 현실에서 히어로 역을 맡은 정상 영웅과 <인히바> 월드 속에서 하자 영웅 사이의 대칭 구조. 화면 속의 정상 영웅들이 관객을 직접 마주하는 정면 앵글. 미키 울프먼의 결혼 생활을 matrimonial drama로 묘사하는 것도 마찬가지. 8. 나레이터가 극 중 인물로 존재하는 특이한 구조로 영화가 설계되어 있어 연기처럼 인물들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디졸브 효과와 함께 주인공의 탐정 놀이가 더욱 환각적이고 몽상적인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Hallucinating 9. Chick Planet에서 pussy eating service의 광고판에서 여성 성기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점점 주인공이 음모의 거미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이미지를 연출했다. Welcome to the world of the inconvenience! <블루벨벳> 데이빗 린치에게 개미굴 클로즈업이 있다면, <인히런트 바이스> PTA에게는 음부의 구멍과 몇 가닥의 음모들이 있다. 10.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코이의 사진'은 '최후의 만찬' 속 예수처럼 연출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다시 살아돌아 오는 결말과, 이에 덧붙여지는 redeem이라는 나레이션에서 결부되어지며, 정신병동에서 돌아오지 않는 소녀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이 영화는 해변의 바다물의 세례 속에서 미국이 정화되고 파이오니어들의 바다로 부활하기를 몽상한다. 11. 이 영화의 첫번째 숏. 골목 골목이 이어진 집들 사이로 마주보이는 바다. 이 숏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두 번 반복되며 영화 전체의 구조를 은유한다. 이 영화는 탐정 놀이로 엮어진 이야기의 골목 골목을 헤메다가 히피 연인이 거닐었던 과거의 해변을 다시 밟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그래서 약을 빨고 몽상한다. 그 몽상이 동일한 숏을 두 번 반복하는 이 영화가 꾸는 꿈이다. 그 위에 덧붙여 지는 황홀한 나레이션. She came along the alley and up the black stairs the way she always used to. 12. 아쉽게도 제대로 한글 자막이 안 되어 있다. 그래서 첫 관람 때 잘 못 이해한 부분이 몇군데 있었다. 예를 들어, 울프맨 부인을 찾아가는 씬 전의 나레이션은 'Shasta had mentioned possible laughing academy angle to Micky Wolfmann matrimonial drama.'는 '샤스타는 울프만의 가정 드라마(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부부 생활에 대한 비유)가 정신병원(laughing academy)으로 향하는 것(즉, 샤스타가 말한 울프만 부인의 음모)를 언급했다.'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샤스타가 울프만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재밌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로 오역되었다. 이 오역 때문에 첫 관람 때, 울프만 부인을 찾아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나레이션을 올바르게 번역하면 그 음모의 일부를 슬쩍 부인 앞에서 떠보면 어떨까? 하는 계획을 염두에 두고 찾아간 상황인 것이다. 근데 워낙 나레이션에 쓰이는 영어가 쉬운 영어가 아니라 고급진 미문이라 적합하고 맛깔나게 번역하기가 참 어려울 듯 싶다. 은근히 웃음 터지는 포인트들도 많은데 잘 만 번역되면 충분히 재밌고 대중적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야기의 뼈대는 '약 빨은 하드보일드+전여친과의 재회 로맨스+경찰과 탐정의 티격태격 브라더맨십' 전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것들인데, 개봉도 못 한 게 넘나 아쉬운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