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미인

인 콜드 블러드
평균 3.9
실화를 기반으로 한 카포티의 팩션이 원작이다. 베넷 밀러의 카포티와 완벽히 상호 호환되며 차이를 보인다면 ‘인 콜드 블러드’라는 타이틀을 다루는 관점, ‘카포티’에서는 ‘냉혈한’이란 제목을 줄곧 작가에게 짐 지우는 반면 이 영화는 사형제도를 시행하는 사법당국을 멸칭한다. 지금에 와서는 원작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으나 트루먼 카포티는 범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려 했던 선지자적 프로파일러였다. 그가 놓친 것이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당위를 위해 로직을 짠다는 것, 독방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의 머릿속에 얼마나 잘 표현된 불행과 상실이 있었겠는가. 냉혈한이라는 제목은 당연히도 범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을 텐데 영화를 보면 마음이 동한다. 특히나 사형 직전 창가를 적시는 빗물과 페리의 얼굴에 드러난 속죄의 눈물은 그야말로 편승엽의 찬찬찬. 쓸쓸히 창밖을 보니 주루룩 주루룩 주루룩 주르륵 밤새워 내린 눈빗물, 가사처럼 눈물과 빗물의 처연한 꼴라보 데드맨 행잉,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없애버리는 것은 인간사 고유의 방식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가느다란 실패가 스며있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고, 사람이 내리는 판단은 실수를 담보로 하기 때문. 찬찬찬을 노래방에서 처음으로 불렀던 날이었다. 그간 밤새워 내린 눈빗물이라고 들렸던 가사의 실체는 밤새워 내리는 빗물이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감상적이지 않았다. 이 영화의 마지막처럼 차라리 건조한 편이지.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냉혈한이란 제목을 불도장처럼 찍어낸다. 산드라 블록이 지구를 딛고 일어서는 엔딩의 ‘그래비티’ 북 치는 노익장의 한스짐머가 있던 ‘더 다크 나이트’의 마지막 활자를 떠올려보자. 팽이는 돌아간다의 인셉션도 괜찮다. 떠올렸는가, 그럼 넘어간다. 영화가 다다를 수 있는 정점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마지막에 제목을 낙인 하는 건 쿠아론이나 놀란... 보통 요 정도 선에서 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담 파이날 타이틀이 명작의 인장인가? 물론 이 활자들이 모든 걸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도 이 방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호연했던 카포티를 여기에 곁들이다면 더할나위 없을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