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thel

쇼군
평균 3.9
2차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이 보여준 저력과 기행은 서양인들에게 수많은 의문을 남겼다. 카미카제와 같은 전체주의적 습성의 진원을 찾고자했던 그들에게 서양인 주인공의 시선을 통한 과거 일본의 간접적인 체험은 매력적으로 느껴질수 밖에 없다. 사실 쇼군은 이미 1980년대에 동명의 이름으로 히트를 쳤던 드라마이기도하며 권력 싸움이 큰 줄기를 잡고 있기 때문에 내러티브적으로도 재미가 없기가 힘들다. 세트고 의상이고 촬영이고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나는데다가 배우들 연기마저 구멍을 찾기가 힘든데 외모도 다들 출중하다. 소위 전세계 일뽕들이 취하기 딱 좋은 소재와 완성도의 드라마인데 그렇게 외형적으로만 이 드라마를 소비한다면 극의 요점을 놓친 것이다. 자연재해의 잔존으로 생겨난 일본 사회 전체의 내재된 불안감과 통일되지 않은 권력으로 인한 전란의 연속은 얼마나 인간이 기형적 사고에 빠지기 쉬운지를 보여준다. 오리엔탈리즘적인 접근에서의 일본의 낭만화가 아닌 국가 전체가 연극을 할수 밖에 없게 만드는 전체주의적 문화의 폐해에 집중했다는 점이 그저 일뽕들에게만 어필되는 드라마와는 궤를 달리한다. 극 중 시기도 시기거니와 대사에서도 조선인의 시체더미가 언급되니만큼 우리나라 입장에서 좋게 보기는 힘들 수 있다. 또한 사무라이와 같은 왜색이 짙은 문화에 대한 서양 입장에서의 동경 어린 시선도 일부 보인다. 다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모든 행동의 단초가 되는 그들의 체념과 정신승리에 대한 이방인으로써의 조소가 낮게 깔려있고, 명예와 위신이라는 변명 아래 할복을 반복하는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자기 희생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그 어떤 비이성적인 우두머리의 명령도 군말없이 따르지만 필연적으로 생기는 인간의 감정은 대의라는 이름으로 깔아뭉개버린다. 이와같이 숙명을 강조하면서도 자포자기식으로 본인의 처지를 외면하는 일본인들과 그에 반해 어떤 일이 닥쳐오던간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서양인을 병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과거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셈이다. 또한 이념의 충돌로 생기는 간극을 좁히려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신념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로맨틱한지 왠만한 로맨스 정극보다 더 제대로 표현해냈다는 점도 칭찬할만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인들의 군중심리를 서양인들의 눈높이에서 심도있게 묘사하여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어볼 수 있는 장점덕에 보편적인 시청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만한 대체 역사 드라마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