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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후드티

보라색 후드티

3 months ag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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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책 ・ 2025

평균 3.8

장강명의 이 책이 오히려 ai에 대한 (대중적인) 불안한 정동을 징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 체스는? 초반에는 정말 재밌게 읽긴 했으나 동의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래서 아쉽기도 했다. 체스는 20세기 말 슈퍼컴퓨터에게 졌다. 바둑계보다 체스계가 먼저 온 미래 아닐까? 좀 다르겠지만 체스계는 어떤지 찾아보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바둑과는 다르게 체스는 훨씬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이고 플레이어도 많다. 그렇다면 ai 이후 그들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나? 2. 인간의 바둑 자꾸 인간의 바둑 어쩌구 하는데 사실 그런 게 어딨나... 당대의 시대적 담론에 의해 구성될 뿐이지 무슨 인간의 바둑이 있고 인간의 체스가 있고 인간의 글쓰기가 있나... 하물며 인간의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과연 동질적인 개념이 가능한가? 3. 자본주의 사실 바둑계의 공포는 자본주의 내 사양 문화로 내몰리는 바둑계에 대한 현실 때문이지 않나. <퀸스겜빗>처럼 바둑 시리즈 드라마가 넷플릭스로 만들어져 전세계를 강타하고 갑자기 모든 인간이 바둑을 사랑하고 올림픽에 바둑 추가되고 바둑 월드컵이 4년마다 열리고 레알 마드리드처럼 레알 바둑 구단이 생긴다면 ai가 인간을 이기든 말든 공포감은 다 사라진다. 10년만 지나도 그냥 ai를 잘 활용해서 바둑 잘 할 거다. 체스를 살펴봤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요즘은 릴스에서 체스 경기도 뜬다. 체스 인플루언서도 많고. 오히려 숏폼 제도와 현대 사회가 체스의 인기를 더 끌어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ai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4. 위대한 작품 288편? 쓰레기 288만개 가장 공감할 수 없던 건 만약 ai가 위대한 작품을 하루에 288개 쏟아내면 어쩔 거냐고 장강명이 말하는 바다. 그건 진짜 말도 안 된다. 바둑은 계산하는 거고 누가 더 우위인지 둘이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계산기로 곱셈 더 빨리한다고 인간의 무언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세탁기가 더 빨래를 빨리 한다고 '인간의 세탁'이 사라져서 우리의 옷에서 맵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쓰레기 양산을 더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ai 이후 대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과제로 내지 않는다. 모두가 유년부터 ai에 익숙하고 20살 대학에 오면 ai로만 글을 쓰기 때문이다. ai가 일자리를 뺏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른 문제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ai가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 글쓰기 능력을 부수고 카드뉴스나 숏폼 등 쓰레기 콘텐츠를 1초 안에 수백개씩 만들어내고 우리들은 빅테크 기업의 체제 내에서 시간을 점점 뺏기게 된다는 거다. 위대한 작품 288개가 하루에 생산되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쓰레기 콘텐츠 288만개가 하루에 생산되는 걸 먼저 두려워해야 한다는 거다. 이 책은 정말 <터미네이터>적 불안 정동을 그대로 답습한다. ai 시대에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ai가 모든 걸 뺏을 거야! 이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서서히 느리게 숨막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5. ai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 거라는 환상 일단 위대한 작품이 뭐냐는 정의는 차치하고, 이미 이것부터 말이 안 된다. 만들 수도 있다. 그럴 듯하게 무언가 만들겠지. 그러나 저렇게 단순히 ai가 위대한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여전히 공상과학 수준의 사유 같다. 그렇다면 반대로 ai가 인문사회학 위대한 논문 288개를 하루에 쏟아낼 수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를 다 바꿔버리는 새로운 진리의 역사관을 ai가 만들 수 있는가? 행정체계와 제도 개선에 대한 진리의 보고서를 만들어서 가난과 폭력, 차별과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게 가능한가?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서 그거 하나만 봐도 인간이 며칠은 감동할 정도로 만들 수 있는가? 순식간에 아인슈타인 뺨치는 논문 288개를 매일 쏟아내서 1년만 지나면 웜홀 우주여행 하고 29세기 정도의 과학 기술의 미래로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는가? 아니다. 진짜 아니다. 사유란 바둑처럼 정답이 있지도 않거니와 누군가를 이긴다고 해서 끝나는 게임이 아니며 일직선으로 발전하는 그런 건 없다. (이길 확률 따위는 정의되는 지점과 담론에 의해 애초에 정의되기가 불가능하다.) 세상에 어떤 초월적 진리란 없다. 진리는 발견되면서 동시에 발명되는 것이지 우리가 가닿아야 할 목표가 실제로 있는데 여전히 못 가는 게 아니다. 내 사유의 철학적 기반이 장강명과 너무 다른 거 같다. 결론적으로 정말 좋은 책이 아니었다. 우리는 오히려 ai 시대 이후 바보가 되는 걸 걱정해야 한다. ai만 똑똑해지고 우리만 바보가 되는 게 아니라 ai까지도 바보가 되는 것이다. 왜냐? ai가 바보인 게 더 돈이 되니까. 숏폼 100만개 생성해서 구독자로 돈 버는 게 낫지 위대한 글을 뭐하러 ai가 만들까? (대체 누가 그런 비합리적인 짓을 하냐. 결국 돈이 안 된다는 것. 결국 또 돈이라는 것) 자본주의적 사유도 부재해서 조금 뭐랄까 이 책은 대체 뭐지 싶었다. 장강명의 ai 이후 불안한 마음을 담은 책이랄까. ps. 반대로 ai 시대 이후 위대한 작품을 우리가 구분해낼 역량이 있을까? 죄다 쓰레기만 사랑하게 될 것이다, 너도 나도 쓰래기에 둘려쌓여 쓰레기만 보고 산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이 좋은 것인지 인지할 수 있긴 할까? ps. 언어 생성형 모델은 결코 새로운 사유를 제공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재의 ai와 터미네이터의 ai를 퉁쳐서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거 같다. 마치 좀만 있으면 쉽게 발전해서 생각할 줄 아는 기계가 될 것처럼. 그러나 아니다. 계산기가 컴퓨터인 것은 아니며 사진기가 스마트폰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벌써 먼 미래를 쉽게 생각하는데 지금 정말로 생성형 ai 이후 어떻게 변하고 있는 무슨 문제에 마주쳤는지 좀 알아볼 때이다. ____________ ____________ ____________ ____________ ____________ ☆☆추가 논의☆☆ 과기대에서 기획한 콜로키움 을 추천한다. 웹진 '한국연구'에서 실린 글들도 참조하면 좋다. 생성형 인공지능 이후 특히 대학의 글쓰기 교육은 험난한 상황에 직면했다. 학생들 모두가 자료 찾기를 지피티에 맡기고 글도 지피티가 쓴다. 교수자는 지피티가 쓴 글을 채점한다. 이걸 막고자 여러 방법을 쓰지만 결국 본질적으로 제지할 방법은 없다. 검색도 쓰기도 외주화하는 학생들.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세대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사유는? 사유의 힘이란 읽고 쓰는 데서 온다. 사유할 능력을 잃어버린 세대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LLM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니까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자아를 가진 인격체스러운 초고지능 AI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 수업에서 필기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있다. 수업을 녹음하고 지피티에 텍스트를 넣어 학습자료를 만든다. 시험도 지피티가 준 걸로 풀고 레포트는 모조리 지피티가 쓴다. 문장은 매끄럽고 참고문헌도 있다. (주변 지인 강사들의 말에 따르면 주석이 틀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한다. 지피티 할루시네이션의 가장 큰 특징. 없는 논문을 인용하기! 학생들은 교차검증도 하지 않고 그냥 레포트를 제출한다.) ai에 대한 윤리도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방법도 모르고 교육도 없다. 교수자는 이 레포트가 지피티가 쓴 건지 의심하고 '검증' 하느라 피드백에 쏟을 시간을 뺏긴다. 대학 수업만 그럴까? ai에 대한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우려스럽게도 이 책에 담긴 내용(이 흥미로우니)만을 관심 가지는 지점들이 많아지는 듯 보인다. 그래도 이 콜로키움 등 많은 사람들이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