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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엠

연엠

6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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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기록

영화 ・ 1955

평균 3.5

제목(生きものの記録)의 정확한 번역은 <산 자의 기록>이 아니라 <산 것의 기록>이다. 일본어에서 者와 物은 둘 다 훈독이 もの인데, 이 영화에서 もの는 자기가 겪은 피해 사실조차 망각한, 그래서 가해자로 치환된 비인간적인 인간들을 향한 대명사다. 그러므로 "미친 게 그 환자인가, 이런 시대에 정상으로 살 수 있는 우리들이 이상한 건가"는 비인간적인 가해 당사자들을 향한 물음이다. 이 질문은 피해와 가해의 공존을 겨냥하고 있지만, 그 가해에 일본의 집단적 책임 같은 건 빠져 있다. 가해자도 자기가 받은 피해 앞에서는 한없이 억울하고 답답해지기 마련이니까. 일본은 우리 입장에서는 가해자지만 자기들 입장에선 유례없는 피해자다. 원폭은 그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이상할 만큼 큰 피해였고 앞으로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피해를 잊어야 한다. 잊지 못한 자는 정신병에 걸리며 그 정신병을 생산하는 가해자는 어느 정도는 피해 사실을 잊은 피해자들이었다. 이 과정을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선, 마치 영화가 나카지마의 공포가 어디에서 유발되었는지 낱낱이 파헤치지 않고 그저 전시하고 암시하기만 했듯, "그 악몽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같은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고 던져서도 안되므로, 19~20세기의 일본이 저지른 만행 같은 걸 들먹이며 "지들도 가해자인 주제에"라고 말해선 안 되는 것. 그러나 피해의 재생산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사고의 한계를 재생산의 현장으로 한정하는 일은 완전히 같은 형태의 피해 재생산이다. 현해탄 이쪽에서도 피해는 재생산되고 있으므로. 왜 열도인들은 열도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걸까? 공장만 말하는 자식들을 보면 열도인의 사유는 그 한계가 해안선 안쪽에 꽉 매여 있으며 바깥으로 확장하지 못하는 것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바다 밖을 얘기하는 피해자 나카지마는 제법 상징적인데, 그런 자조차 그저 열도 바깥의 안전을 말할 뿐인 걸 보면 애당초 원폭의 피해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시각과 고찰을 배제하는 전후•현대의 일본, 어쩌면 전전•전중의 일본의 편집증은, 열도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므로, 열도 밖에 대해서도 기껏해야 '안전한 땅'만 생각하는 수준이므로, 정확히 아는 거라곤 비교적 안온했던 국토에 뜬금없이 벌어진 도쿄대공습과 원폭투하 같은 것밖에 없으므로, 다시 말해 아는 게 없으므로, 아예 성찰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던 곳에서만 살아가고자 하는 잘라파고시언들. 여하간 종전 10년이 되기도 전에 이런 치유의 영화를 만든 일본이 부럽기도 하면서, 1954년이라면 일본이 반도의 전쟁으로 큰 득을 보고 미친듯이 성장하기 시작한 초창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상처는 돈으로 치료하는 거라는 만고의 진리를 새삼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