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천수경

천수경

2 years ag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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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책 ・ 2024

평균 3.9

누가 내게 200년 후에도 읽힐 한국 작가를 묻는다면,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이름. 한승태. 문학도 종국엔 삶에 대한 르포, 마음에 관한 탐사 보도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글들. 이전 책들 <인간의 조건> (<퀴닝>으로 이름 바뀜) 이나 <고기로 태어나서>와 마찬가지로 아쉬운 점들은 있다. 한승태는 거시적인 구조의 개선보다 당장 노동의 현장에 삼켜지는 미시적인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데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고, 구조에 일조하는 죄를 따져 묻는 일보다는 그 동조에 배경이 될 수밖에 없는 삶에 빛을 주는 사람이라 그렇다. <고기로 태어나서>가 채식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기를 대놓고 머뭇거린 지점을 비판할 수 있듯, 이 책에도 누군가는 짚고 가야할 소심함, 혹은 지나친 관대함 같은 게 있다. 2024년도에 말해져야 하는 것은 인력사무소가 사랑방으로써 기능하던 때의 정다움보단 인력사무소의 쇠락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어떻게 닿아있는지다. 오늘날 리튬 공장에서, 제지 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죽는 이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리고 애초에 위험에 더욱 노출되는 이유가) 인력이 동원되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위험한 환경에서 사람을 ’1일 단기‘로 쓰는 게 불법이다. 너무 오랫동안 무시된 규정이라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폭력적인 동료들의 가치관에 관해 다소 중립적이다. 온갖 것들을 독자가 배꼽 빠지도록 비꼬면서 여성 혐오나 시대착오적인 차별 따위는 그의 냉소가 닿지 않는 비무장지대로 방치한다. 노동 환경 바깥의 시간으로 형성되는 인간의 자질들은 감히 건드리지 않는 느낌. 노동 자체가 그 외의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보편적인만큼, 노동을 이야기하면서 그 바깥의 일상을 탐사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지 않나 싶었다. 특히나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동료들이 일터를 괴롭게 만드는 풍경을 세밀화로 그려낼 거라면, 좀 더 나아갔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그 모든 부조리는 인간의 육체 안에서 다 이어져 있기에. 아무튼 아쉬운 점들을 비판하는 것조차 머쓱할 정도로 거의 책 전체를 밑줄 그으며 읽었다. 정말로 꼭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한승태를. 진심으로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