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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터넷 친구
평균 3.3
<인상 깊은 시 구절들> 이면들 中 찬사와 격려는 손바닥으로 탄생하는데 손등은 왜 조용하지. 손바닥으로 손등을 덮어 가며 파이팅을 외치는 어린 선수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겨울의 자그마한 불구경 中 야광 물질은 외로운 생각에서 발견되었대 (…) 지옥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까맣게 타들어 가는 눈앞으로 내일이 올 수 없을 거예요 표본을 끌어안는 나를 살게 하세요 희수의 낮 中 불행은 안에서 밖으로 달아나는 순간일까 밖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것일까 (안에서 밖으로 파고들어서, 결국 그 안을 곪게 만들어 밖으로 달아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안드로이드 기술관 中 어떤 날의 꿈속에선 사람들이 미래형 마음을 쏘아 올렸다. 입력과 검색으로 사랑을 찾는 방법, 요즘 누가 찻집에서 만나나요 (…) 우주에도 생명이 살 수 있을 거야 초라한 감각 中 식물원이나 숲엔 유령이 많을 것이다. 유령을 유리병에 모아 흔들면 예쁜 소리가 난다. 사랑도 없이 특급호텔 中 살 수 있는 한 오래 살고 싶다 영원이 없는 곳에서 돌과 해부학 中 몸에서 흘러나온 생각이 몸의 중심을 뚫고 지나간다. (...) 조각상의 손바닥을 만지며 최선이란 것을 만든 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오래 바라보며 눈이 먼 것이다. 무명 화가와 무제의 플래시 中 야외로 쏟아지는 마음은 생물일까 비생물일까. 나무 앞에 화가가 멈추면 누가 더 풍경다운지 (…) 식물처럼 자라는 나쁜 생각을 닦아냈다. 화초를 다듬는 노인의 취미는 그래서 생겼구나 끝 여름의 보물찾기 中 꼭 감은 눈은 결백이고 실눈은 양심이고 (…) 수박을 먹지 않아도 여름은 여름으로 불렸다. 일기를 쓰지 않아도 용서되는 방학이 있을까? 여름 안의 동양 中 편지는 모두 태우는 것입니다. 나의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더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으니까요. (…) 낮잠이 맑은 식물처럼 사람에게 시체라는 말이 붙/ 지 않는다면 나의 장례는 어떨까요 야간산행 中 공룡처럼 죽고 싶어 왜 뼈가 남고 자세가 남고 내가 연구되고 싶어 일요일에 샐러드 먹기 中 식물이라는 기분, 툭하면 죽을 수 있다. (…) 일방적인 사랑으로도 식물은 압사당한다. 도시적 상상력 中 의자에 앉으면 의자 모양대로 바뀌는 사람들을 봤을 때, 너는 그들이 마치 기울어진 그릇에 담긴 물 같다고 말했다. (…) 평화가 물처럼 흐른다. 같은 표현 뒤로 가만히 놓인 의자는 반듯함 없이 구부러짐 없이 도시 중앙에서 울창한 숲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라스트 타워 中 사람들은 왜 자꾸 사람보다 힘이 센 것을 만드는지. 그러다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파이는, 박물관이 영원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것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인학습 中 큰 화면에 대고 뭐라뭐라 쓴다 신의 영역 같다 1과 0으로 이뤄진 기도니까 (…) 흘러가게 두는 마음을 ‘그냥’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은 상상이다 (…) 연습할 수 없는 일들은 언제나 쉽게 일어났다 나쁜 실험 中 지루한 신을 위해 상징처럼 너저분하고 고풍스럽게 비워지는 저택 이런 걸 본 적이 없나 보구나. 동화 같은 한 세기가 조용히 무너지는 그런 리조트 中 여름이 와도 녹지 않는 내 희망에는 계속 눈이 내려 (…) 온종일 문을 닫지 않아서 가끔 미래 같은 게 와 (…) 건조된 조각 자몽 뜨거운 물을 따르는 것처럼 자몽이 잠기는 속도로 멀어지는 이웃들 가상의 비 中 즐겨찾기로 별을 늘리며 미래를 찾고 있다. 심해의 깊이 이별의 가능성 속에 하나의 물범진 일어난다. (…) 우리를 빗나가는 예외를 주워 담으며 친애하는 블로거에게 中 당신은 몇 월을 살고 있는가 그것은 봄이나 여름처럼 내/ 가 말할 수 있는 형태와 발음을 가졌는가? 미드나잇 볼케이노 中 모두가 사랑해라고 외쳤다 (…) 생일 초는 한 번에 꺼야 하고 숨은 왜 이렇게 짧을까 유사 과학으로 이루어진 미래를 기다린다 핑크타운 中 생일 초를 끄는 것처럼 어둠이 와도 좋잖아요 우주에서 인간은 먼지라니까요 러브러브 다마고치 中 쏟아져 내린 잔해 좀 봐 너에 대한 은유들이란 말이야 <작품 해설> 1. 서로는 서로를 포괄한다. 나는 관람객이거나 진열된 것 모두이다. 나는 ‘나’를 객체화한다. 나는 ‘나’를 진열한다. 2. 시는 특정한 상을 거듭 이미지화함으로써 원본에서 멀어져 간다. 이 과정은 제현된 이미지가 더는 원본으로 귀속되지 않도록 만든다. 최초 원본으로 회귀하는 일은 더는 중요하지 않다. 3. 여한솔의 시는 마음과 내면의 소유자이자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로서 자아/주체가 지닌 권위를 스스로 해체하고, 나아가 사물화된 자신의 일부에 주관적 해석을 더함으로써 ‘객관적 시각’으로 대상물을 ‘바라보는(대상물로 상정하는 시선)’ 방식만으로는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실험한다. 4. 성경은 ‘성경’으로서 외부와 내부가 모두 관찰된다는 점에서 둘은 모두 보다 초월적인 자아인 ‘나’의 일부로 읽힌다. (…) 즉 자기 자신에게 다른 이름을 붙이는 이 작업은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욱 주관화하기 위함처럼 보인다. 5. ‘나’의 대상화는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행위로 확장된다. 여기서 ‘사물’은 ‘나’에서 파생된 물질로, 점차 넓어지고 옅어지는 자아에 대한 개념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물이다. 6. 우리는 무언가가 사랑을 ‘받는다’(사랑의 ‘대상’으로 간주한다)고 생각하지만, 받는 이의 관점으로 이 행위를 전환할 때, 그것은 사물화된 어떤 것이 그렇게 하기를 요구받는다는 의미에서 ‘사랑 당한다’고 표현될 수 있다. 객관화된 주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7. 어쩌면 우리는 ‘주체는 보고 대상은 관찰된다’는 시선 위계의 도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능동성을 확인해 왔을지도 모른다. 8. 피동형 주체성은 객관화된 대상물의 시선을 빌림으로써 확인할 수 있고, 그것은 이미 나로부터 사랑 당하는 무엇이 이미 그 자리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나는 그냥 믿고 있는 것”이다. 셀 수 있는 사랑이 거기에 있고, 그것이 어딘가에 닿을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