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나는 너에게 들어가고 싶었다.”
윈도우를 사이에 둔 너와 나의 무한한 되비침
비처럼 쏟아지는 마음의 코드들
202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여한솔의 첫 시집 『나의 인터넷 친구』가 민음의 시 331번으로 출간되었다. “상투를 벗어난 새로운 발상과 시적 호기심을 끌고 나가는 감각이 신선”하다는 등단 당시의 평가는 이 시집에서 한층 완성도를 갖추고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나의 인터넷 친구』는 신문물의 상징이었던 인터넷을 유년기의 향수로 기억하는 세대의 목소리를 담았다. SNS도, AI도 없이 검색 엔진이 전부이던 시절의 인터넷은 타인과 실시간으로 닿아 있는 느낌보다는 광활한 사이버 공간에 홀로 남은 듯한 외로운 자유를 선사하는 곳이었다. 윈도우를 통해 사이버 세상에 접속하듯이, 여한솔의 화자는 유리·카메라 렌즈·창문과 같은 투명한 막 너머에서 낯선 대상을 마주하고 그에게 사로잡힌다.
‘나’의 마음은 낯선 ‘너’를 탐구하고 싶은 욕망으로, 또 그만큼 ‘너’에게 탐구당하고 싶은 로망으로 가득하다. ‘너에게 들어가고 싶다’는 이상한 고백은 사실 네가 되어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사랑해’ 코드를 통해 여한솔의 세계 안으로 초대된 독자는 다마고치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실험실의 표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리바꿈은 관찰당하는 동시에 관찰하는 존재가 되는 경험이자, 투명한 경계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해 보는 경험이다. 코드화가 끝나고 『나의 인터넷 친구』 패치가 장착되면, 우리는 견고한 자아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침투 가능한 상태로 변할 것이다. 사랑이란 경계를 허무는 일이므로.
■ 네가 되려는 마음
카메라로 서로를 담을 땐, 카메라 안에 카메라 안에 카메라…… 우리는 서로의 컷이 되었다.
(……)
그런 거 모르지
친구야, 나는 너에게 들어가고 싶었다
― 「비디오 상영회」
인간은 불투명하다. 불투명하기에 속을 알 수 없고, 그렇게 창출된 내면은 인간의 고유함이 되었다. 그러나 여한솔 시의 화자들은 마치 파인애플 속을 파내듯이 상대의 내면을 샅샅이 파악하려 한다. 카메라나 망원경 등의 렌즈를 경유하여 쏟아지는 관찰의 시선은 ‘너’의 마음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표본으로 만든다. 이때의 시선은 주체 고유의 권력과는 다르다. 내면의 물질화는 ‘너’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를 찍는 ‘너’를 찍는 ‘나’의 모습을 상영하는 것. 나아가 마음을 표본으로 만들어 연구하는 것. 스스로 다마고치가 되는 것. 이는 대상을 향한 궁금증에 더해, 그의 시선으로 보는 ‘나’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궁금증 또한 포함하는 것이다. 이제 마음을 물질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선명해진다. 네가 되어 나를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모두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네가 되려는 마음은 그러므로 나의 것만은 아니다. 너 또한 나에게 ‘네가 되려는 마음’을 품었으면 하는 것, 이것이 여한솔의 시가 보여주는 마음의 역동이다.
■ 셀 수 있는 마음
이것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코드를 만들었으니까요
(……)
어떤 정원이나 인터넷은 길을 잃기 쉽지만
배롱나무 이파리처럼 내려앉는 사랑이란 단어는 셀 수 있어요
거기에 누군가 있습니다
나는 그냥 믿고 있는 것입니다
― 「나의 인터넷 친구」
‘사랑해’라는 코드는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이 마음을 수신했는지 발신자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다만 믿는다. 사랑이란 단어가 내려앉는 곳에 누군가가 있어서, 내가 보낸 마음이 유실되지 않았을 거라고. 여한솔이 보내는 마음의 코드는 초대장과 같아서 실시간 응답과는 거리가 멀다. 즐겨찾기를 통한 다른 사이트로의 이동에도 ‘철컥’ 하고 문고리 여닫는 소리가 들리는 여한솔의 인터넷 세상은,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사이버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날로그 감성을 보여준다. 셀 수 없는 명사인 사랑이 하트의 개수로 치환되는 세상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하트의 개수가 아니라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는 일이다. 『나의 인터넷 친구』가 주는 아날로그함은 이러한 시차에서 비롯한다. 길을 잃기도 하고, 마음을 전한 뒤 오랜 기다림을 견디기도 하는 장소로서의 인터넷은 MZ 세대의 노스텔지어를 자극할 것이다. 인스타그램 하트 백 개보다 싸이월드 일촌 한 명의 방명록을 더 소중하게 기억하는 이라면 더더욱.
■ 작품 해설
자연이 이미 거기에 있듯 우리의 사랑도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그것을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의 새삼스러운 환기는, 우리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고 사랑당하는 존재로 있음을 ‘그냥 믿는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가 자신을 남과 같이 사랑하고, 남을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은 아닐까. 진열된 것의 마음을 읽기, 그것의 사랑-당함 가까이에 가는 식으로.
─선우은실(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