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석미인

석미인

5 years ago

3.5


content

비기너스

영화 ・ 2010

평균 3.8

2021년 01월 15일에 봄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실은 이 영화 대사랑 비슷한 신형철의 다른 글 제목 ‘죽일 만큼 사랑해’를 찾다가 이 문장이 더 아리게 박혀 적어본다. 영화랑 어울리기나 한건지 잘 모르겠다. 어떤 문장은 읽기도 전에 마음속에 들리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어떤 뜻인지 너무 알 것 같기도 하니까. 그냥 적었다. 올리버에게도 없음, 결여가 있었다. 정확한 사랑 속에 태어나지 못한 정체성 같은 거. 그걸 부정했는지, 인내했는지, 그녀에게 주려고 했던 건진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알 수가 없었지만. 옛날에 샘 해밍턴이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비슷한 상황을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부모가 이혼한 이유는 아버지가 동성애자여서 였다고. 내용보다는 그때 이야기를 꺼내기 전 머뭇거리던 시간과 입술을 파르르 떨며 울먹이던 표정이 더 기억에 오롯하다. 이미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힘들게 꺼냈던 순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학습한 드라마틱한 표정을 본 거 같아 마음이 이상했었다. 그가 했던 고백 중에 그래도 어머니가 평생 사랑한 남자는 아버지밖에 없었다고 하시더란 말도 있었는데. 그의 말 중에 유일하게 거짓말 같은 말이었으면서 가장 믿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이 영화 속에서도 그 어머니가 있었다. 늘 우스개와 장난만 치던 장면 뿐이었는데도 그녀는 매번 또렷하게 슬퍼 보였다.  설령 거짓이라도 어떤 것들은 그냥 믿고 싶을 때가 있다. 내게 유리한 방식이나 내가 하는 행동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면 곤란하겠지만. 자기 신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건강해지는 방식으로 믿고 싶은 것들 말이다. 올리버도 그런 이유였던 걸까. 그는 이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았고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으니까. 샘 헤밍턴이 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어릴 적엔 아버지가 자기를 왜 낳았을까 원망했고 저주했으며 어머니를 걱정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와 화해했다고. 나는 그 화해했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하리라 믿고 싶다. 더불어 이 영화도 그런 것이었다고. 아버지와 올리버, 그리고 그 자신이 화해한 거라고. 화해와는 별개로 그 안에서의 슬픔은 공존하는 거니까.  언젠가 호주와 우리나라의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샘 해밍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이 호주에게 점수 낼 때 열심히 손뼉 치던 장면이었는데. 맞부딪히는 것과는 화해했지만 너무 아련한 표정이라, 그가 아픈 고백을 주서 삼키던 표정보다 그게 더 슬퍼보였었다. 물론 이건 내가 그렇게 믿어서 그런 것일 테지만.  딱히 존재나 정체성 같은 게 아니더라도 나는 많은 것들을 내가 더 건강해지는 쪽으로 믿고 싶다. 그래야 나 자신과도 화해하고 누군가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