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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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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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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네카타 자매들

영화 ・ 1950

평균 3.6

마리코는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타인의 사연을 각색하여 펼쳐놓는 일인극을 보여준다. 이 소박한 연극은 <무네카타 자매들>에서 나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비단 그것에 할애되는 시간뿐 아니라, 이 연극 자체가 극의 전개를 뒷받침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게다가 마리코는 항상 대화를 이어나갈 때, '나'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를 제3자 취급하듯 '마리코'라고 굳이 지칭한다. 이상하다. 그녀의 인생에 '나 자신'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때 영화 속 마리코는 언니가 늘 희생하거나 남에게 휘둘리는 삶을 산다고 여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코 본인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마리코의 연극은 그래서 대화 도중 자꾸만 소환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마리코가 연극을 통해 전달하는 대사와 분위기들 속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섞여 있다. 이 가운데 차마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없는 본심(같은 것)이 과연 마리코 본인의 내면을 진솔하게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랬던 마리코가 마침내 연극 속 캐릭터에서 벗어나 고백하는 장면에서, 상대방은 마리코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건 너의 진심이 아니라고 말이다. 마리코는 자신이 연극 속에 본심을 은근슬쩍 숨겨 놓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남들에겐 진솔하게 인식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헐벗은 나의 내면을 잘 알고 있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던 걸까. 어쩌면 마리코가 서구식 신식 문물을 수용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으로부터 그녀의 공허한 심정과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마리코의 몸은 자국 전통 복장인 기모노 대신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싸여 있기에, 그녀는 자신의 진취적이고 당돌하며 개방적인 모습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마리코의 진심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유행과 변화를 소화해 내는 데 있어, 그것들이 내가 추구해 온 가치관과 얼마나 호응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에, 마리코를 둘러싼 껍데기가 언니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늘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네카타 자매들> 속 자매 관계엔 분명히 '과거에서 이어지는 전통-계속해서 변화하는 유행'이라는 대립항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쩐지 영화는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필연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이념·세대 간 대립과 갈등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는 세츠코와 그걸 보며 의아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겠다는 마리코의 모습을 통해, 특정 이데올로기나 가치의 우열을 가늠하는 대신 저마다의 주체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기회가 생긴다. 세츠코는 남편과 함께 했던 고생스러웠던 지난날을 후회하는 대신 현재 내가 느끼는 것들에 최대한 솔직해지기로 한다. 마리코는 모든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세상은 내 멋대로 희곡을 써서 연기로 풀어내는 연극처럼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저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억지로 거스르거나 변화시키려고 하는 대신 담담하게 받아들여 인정하는 것만이, 어쩌면 그렇게나 바라왔던 '잘 사는 방법'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매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자연 풍광을 지그시 바라보고 함께 산책하며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