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명예와 인간의 유한함에서 피어난 성장우화, 환상적 미장센! —— A24 영화치고 스케일은 큰 편이지만 블록버스터는 아닙니다 —— (스포주의) - - - - - - - - - - - - - (상세리뷰, 개인적 해석 다분) 0. 원작 내용 전반적인 영화 이해를 위해서는 원작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한다. 영화의 원작인 <가웨인 경과 녹색기사>는 중세 영미 문학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로 특유의 판타지적 요소 덕에 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이야기다. 가웨인은 그 유명한 아서 왕의 조카로, 원탁의 기사들 중 랜슬롯과 함께 중세 기사의 모범적인 인물로 꼽힌다. 14세기 경 카멜롯 궁에서 아서 왕과 가웨인을 포함한 원탁의 기사들이 크리스마스 연회를 즐기던 중, 녹색의 기사가 나타나 목을 자르는 게임을 제안한다. 그 내용은 자신의 목을 내리치는 기사에게 그에 맞는 명예가 주어지는 대신, 1년 뒤 자신이 있는 녹색 교회로 와 똑같이 녹색의 기사에게 목을 잘려야 한다는 것. 이에 가웨인 경이 응하고, 녹색의 기사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든 채 자취를 감춘다. 1년이 지나자 가웨인 경은 녹색의 기사가 제안한 내용에 따라 녹색 교회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는 여정 도중 어느 성에 들러 성주와 그 아내를 만나는데, 성주는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그가 성에서 얻은 것을 자신에게 주는 교환을 제안한다. 이에 응한 가웨인은 성에 머물면서 성주의 아내의 유혹을 받고, 그녀와의 관계를 거절하는 대신 키스와 함께 녹색 복대를 받는다. 이 복대는 그의 목숨을 지켜준다는 미신이 담긴 물건이었다. 가웨인 경은 자신이 성에서 받은 것인 키스를 성주에게 그대로 하고 떠난다. 복대를 찬 채로 가웨인은 녹색 교회로 가 녹색의 기사를 만난다. 녹색의 기사는 가웨인의 목을 치는 대신 게임의 진상을 밝힌다. 이 게임은 원탁의 기사들을 시험하기 위해 기네비어 왕비를 증오한 마녀가 꾸민 일이었다. 성주의 정체가 변신한 자신이었고 성주의 아내가 복대를 준 것도 자신이 시켜서였다. 이야기를 마친 녹색의 기사는 목숨을 지키려 복대를 찬 사실을 숨긴 가웨인을 이해한다고 하며 그를 보내준다. 가웨인은 이에 수치심을 느끼고 카멜롯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복대를 계속 차고 다니게 된다. - 1. 영화의 각색 방향 위에 기술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린 나이트>는 크게 명예, 인간의 유한함, 성장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주목한다. 원작의 주제, 즉 기사도라는 용어로도 표현 가능한 명예와 인간의 유한함은 영화에서도 핵심적인 근간을 이룬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웨인이라는 인물의 심정과 변화에 주목하고, 이로부터 성장이라는 추가적인 소재를 발굴한다.이로 인해 영화는 원작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어지는 챕터들은 이러한 각색 베이스를 염두해 두고 보면 된다. - 2. 명예 영화에서 가웨인은 아서 왕의 조카라는 신분을 원작대로 유지하나, 그 성격은 차이를 보인다. 청교도적 관습을 엄격히 따르는 전형적인 기사였던 원작의 가웨인은 유약하고 방황하는 소년적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성 밖 평민 여성 에셀과 어울리며 궁 연회에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은 이러한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이는 나중에 설명한 성장이라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설정된 장치이다. 이런 가웨인의 모습을 처량하게 여긴 삼촌 아서 왕은 크리스마스 연회 중 그를 불러 애정을 드러내며 자신에게 재밌는 무용담을 들려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제대로 전투 한번 치른 적 없는 가웨인에게 무용담은 전무할 터. 이에 옆에서 지켜보는 숙모 기네비어 왕비는 원탁의 기사들을 가리키며 진정한 기사는 자고로 무용담이 있어야 함을 충고한다. 이 시점까지 불완전한 기사인 가웨인에게 명예라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자랑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가웨인은 그 자신만의 신념없이 가문의 배경만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이러한 가웨인의 초기 모습은 진정한 기사도 아니면서 기사의 옷차림을 한 채 그려진 그의 멋들여진 첫번째 초상화로 상징된다. 이 때 나타난 녹색의 기사는 가웨인에게 자신의 명예를 위한 무용담을 쌓을 좋은 기회가 된다. 명예 하나 때문에 선뜻 도전에 응한 가웨인이지만 그는 곧 후회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 3. 인간의 유한함 가웨인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게임에 응하지만 그 이후에는 명예보다 두려움을 더 느끼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 가웨인을 조롱하듯 그가 1년 동안 누린 명예, 즉 녹색 기사의 목을 벤 기사라는 칭호는 영화 속에서 제대로 묘사되지도 않으며, 술집에서나 나오는 이야깃거리로 전락한다. 타인의 인정을 바란 명예의 씁쓸한 결과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두려움의 감정은 여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가웨인을 괴롭힌다. 시작 전 에셀의 회유, 강도들의 습격, 험난한 절벽 등반, 성주 아내의 유혹, 여우의 회유를 거쳐 녹색 교회에서의 고뇌까지 가웨인에게 여정을 중단할 기회는 끊임없이 주어진다. 그는 이 과정에서 진정한 명예를 얻는 것의 어려움을 느끼고 수 차례 좌절한다. 체력적인 고난, 식욕/수면욕/성욕 등 각종 욕구,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가웨인의 정신은 피폐해진다. 이러한 가웨인의 심리에 대한 묘사를 실감나게 하는 요인들로 주연 데브 파텔의 연기와 판타지적 시퀀스들이 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눈빛과 맥없이 쓰러지는 데브 파텔의 탁월한 연기는 가웨인이 느꼈을 고통에 관객들이 공감케 한다. 판타지적 시퀀스들은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지 가웨인의 상상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인상을 심어주며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여주는 동시에 가웨인의 내적 갈등을 외부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자면 유령의 부탁으로 해골을 가져오는 장면은 죽음 앞에서 망설이는 그의 심정을 드러내고, 거인에게 동행을 요청하는 장면은 끝없는 도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심정을 드러내며, 인간의 말을 하는 여우는 게임을 회피하고픈 그의 심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상징의 최고점은 성주의 아내가 그려준 가웨인의 두번째 초상화로 나타난다. 멋들인 과장으로 포장된 첫번째 초상화와 달리 빛과 어둠만으로 묘사된 그의 두번째 초상화는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 극사실적이다. 감독이 시대와는 맞지 않게 옵스큐라 기술을 묘사한 이유는 바로 허물을 벗겨낸 가웨인의 본모습을 묘사하기 위함이다. 두번째 초상화에 나타난 가웨인의 모습은 고난과 두려움에 찌든 듯 많이 어두워진 모습으로 첫번째 초상화와 극명히 대조된다. - 4. 성장 기나긴 여정 끝에 가웨인은 녹색 교회에 도달하고, 녹색의 기사는 가웨인에게 자신이 했던 것처럼 목을 내놓기를 요구한다. 막상 종착지에 도달한 가웨인은 고뇌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유한함 즉 죽어야만 하는 운명 때문이다. 그러나 가웨인의 예지는 명예와 인간의 유한함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관객에게 묻는다. 도전에 성공하고 살아남음으로써 주어지는 타인의 인정, 부, 권력은 그 순간에는 달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결국 더 큰 것을 탐하고픈 욕망으로 돌변하고 이는 가웨인을 자멸로 몰아넣는다. 명예는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오지 않고 인간의 유한함은 거부할 것이 아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가웨인은 예지에서 깨어나 자신의 복대를 푼다. 이 복대는 마녀이자 자신의 어머니가 준 물건이자 성주의 아내가 준 물건이다. 이는 목숨에 대한 집착, 인간의 유한함을 회피하기 위한 주술적 도구, 나아가 명예를 쟁취하기 위한 도구를 의미한다.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미이다. 즉 죽음에 이를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약속을 지키는 정직함을 선택하여 결론적으로 두려움을 넘어서는 도전을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선택의 순간 가웨인은 원작과는 다르게 성장한다. 원작에서 가웨인은 복대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순응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웨인은 복대를 포기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 것이다. 자신이 믿는 진리와 덕목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명예이며, 이것은 타인의 인정만 얻는 자랑거리에 불과한 명성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도와줄 자 하나 없이 두려움과 나약함에 도전하고, 증언할 자 하나 없이 오직 가웨인 그 자신이 신념에 따라 녹색 기사에게 복대 없이 목을 내어준 것, 이 행위로 가웨인은 원작과 달리 ‘성장’한 것이다. 처음 복대를 만들어준 것이 어머니라는 점, 모험을 시작하게 부추긴 것이 삼촌과 숙모인 아서 왕과 기네비어 왕비라는 점은 가웨인의 성장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음을 방증한다. 또한 원작에서 가웨인과는 직접적 연고가 없던 마녀가 녹색 기사에게 게임을 사주한 것과 달리, 영화에서는 마녀가 가웨인의 어머니라는 설정을 추가하고, 녹색 기사 또한 어머니와 동료 마녀들의 주술로 나타난 존재임을 편집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어 애초부터 작품은 성장우화임을 천명한다. 이 모든 과정이 종료되면서 유약한 소년에 불과했던 가웨인은 주술 장면 때 피어난 초록 새싹처럼 새롭게 기사로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가웨인에게 녹색 기사는 장난처럼 손가락으로 가웨인의 목을 긁으며 말한다. “Now, Off with your head.” 이는 목을 베겠다는 농담인 동시에 목이 달린 채로 떠나라는 의미이다. - 5. 총평, 판단은 관객의 몫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성장우화로 보았다. 가웨인이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명예란 무엇이며 인간의 유한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영화는 관객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관객의 판단은 사뭇 갈릴 수 있다. 일단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는 원작처럼 판타지적 요소를 계승하며, 현실인지 가웨인의 환상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장면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특히 가웨인의 예지, 녹색 기사의 농담, 그리고 에필로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관객은 서로 다른 결말을 맞게 된다. 가웨인의 예지가 현실이라면 가웨인은 결국 인간의 유한함에 순응하고 거짓된 명예인 왕관에 집착하다 죽게 되고, 이러한 굴레는 가웨인의 자식에게까지 전해져 대를 이어 시험에 들게 한다. 그러나 예지 이후의 선택이 현실이라면, 가웨인은 성장하여 자신의 한계를 이겨낸 영웅이 된다. 이 영화가 인간의 유약함을 다룬 암울한 영화일지, 영웅의 성장을 다룬 밝은 영화일지는 관객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나는 빛을 택하고 싶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성장우화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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