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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ent

Laurent

6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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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존경

책 ・ 2019

평균 3.9

정 : 그러니까 저는, 사람들이 슬프고 외로운 날에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나보다 더 슬픈 사람의 이야기요? 정 : 그 뜻이 아니에요. 그냥 세상에 나보다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나보다 더 슬픈데,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지요. 용기를 말하는 거예요. 저 스스로한테 얘기해요. 저 사람들이 내는 용기를 봐라. 저 사람들이 내는 저 큰마음, 저 멀리 가는 마음을 봐라. 그러고서 생각해요. 저기로 같이 가자고, 저 방향이라고. 제가 계속 슬픈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건, 그들이 보여준 세계로 가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분들에게 자식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미래가 변해야 해요. 아이의 죽음이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되는 거예요. 사랑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슬픔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많이 배우고 있어요. 고민이 될 때 이렇게 물어요. 어느 쪽이 변화의 편이야? 어느 쪽이 더 나은 변화의 편이야? 그리고 변화의 편에 서요. 이 : 대체로 더 고단한 쪽이잖아요. 변화의 편이라는 것은요. 정 : 근데 그게 내적으로는 평화예요. 내적 자부심과 뿌듯함. 이 : 오에 겐자부로의 문장이 떠올라요. “지옥은 내가 간다.” * 이 :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말이 전력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느껴지는데요. 타인에게 느끼는 연민이나 이타심이 그토록 깨끗할 정도로 확실하게 드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게 놀라워요. 정 : 연민 아니에요. 이타심도 아니에요. 이 : 그럼 무엇이에요? 정: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저는 연민으로 잘 못 움직여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존경심이고 감탄이에요.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괜찮고 위대한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유족들을 불쌍하다고, 안 됐다고 착각해요. 절대 아니에요. 너무 슬프지만, 사람이 저렇게까지 용감할 수 있구나, 저렇게까지 깊을 수 있구나, 하는 존경과 감탄이 저를 움직이는 거예요. 사실 저 이타심 별로 없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저한테 역시 좋은 일임을 아는 거죠. 어디에 샘이 있는지 아는 동물처럼, 이: 저는 지금까지 이타심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드린 질문이 부끄러워요. 존경에 대한 경험치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돼서요. 정: 저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해요. 닮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찾고 싶고요. 책도 거울이에요. 책에서 얼굴을 찾을 수 있어요. 책에 얼굴을 비춰볼 수 있어요. 책을 읽는 것은 샤워하거나 세수하는 것과도 같아요. 몸이 아니라 영혼을. _ 이슬아X정혜윤(2019.04.0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