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K

JK

6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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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누

영화 ・ 2018

평균 3.7

1. 텅빈 상영관에서 나 혼자 이 영화를 보며 너무 많이 울었다. 훌쩍거리는 소리 때문에 사람이 없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한편,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다. . 2.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 노동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활동가, 한국 사회의 폐쇄적인 노동정책으로 인해 18년 동안 머물렀던 나라에서 강제추방 된 사람. 이 사례는 이주노동자 인권을 다루는 책과 매체들에서 종종 접해왔었는데, 추방 이후 그의 삶을 오롯이 조명한 다큐를 보게 되니 미누씨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 3. 나는 미누씨가 정말로 끊임없이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18년 동안 한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며 정주하고자 하는 열망을 내비쳤던 그를 한국 사회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내쳐냈음에도, 삶의 의지가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네팔로 추방당한 이후에도 주변 여성노동자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마련하고, 꼭 몇십년 전의 자신처럼 한국으로 향하는 젊은 이주노동자들을 교육하고,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카페를 운영한다. 이렇게나 역동하는 삶의 의미를 수용하려고 했던 사람을 담아낸 영화를 보는 데 어떻게 눈물이 나지 않을 수가 있겠어. . 4. 한국에서 진행되는 행사들에 참여하기 위해 단기 비자를 발급받아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몇시간 만에 다시 네팔로 돌아가야 했던 장면, 몇년 후 드디어 짧게나마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지만 한달만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달하는 자막을 보았을 때 나는 미누씨의 삶이 덜 영화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번 쓰인 후 다시 액자에 붙은 빨간 목장갑은 그런 바람이 이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지만서도. . 5. 수전 팔루디의 <다크룸>에 적힌 마지막 대목이 떠올랐다. "그녀의 누워있는 몸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삶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pp.622-623) . 6. 영화 후반부, 밴드 StopCrackDown의 네팔 공연에서 미누씨가 부르는 노래는 고향과 조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그에게 고향과 조국은 과연 어디였을까. 네팔에서 태어났으니, 돌아갈 곳도 '네팔'이었을까? 그가 18년간 머무른 한국 사회는 '정주'할 수 있는 고향이 될 수는 없었나? 미누씨가 너무나 '한국인' 같으니 그가 당연히 '한국인'으로 귀화했어야 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누구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가 설사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이라는 근거로 존재를 위협받거나 폭력적으로 단속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주노동자들이 '너무 한국인 같이 생겼다'는 말 역시 폭력으로 향할 수 있다. 관련 작품으로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가 있다.) . 7. 영화에 비춰진 미누씨는 나이로 서열을 세우려고 하거나, 한국 아저씨처럼 생겼다고 혹은 한국말을 잘한다고 '칭찬'(같은 평가)을 던지는 무례한 한국인들에게 특유의 허허거리는 웃음 소리와 농담으로 넘겨버린다. 이건 한국에서 오랫동안 타자의 위치에서 살아봤던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궤적이자 감각이다. (그렇다고 그의 웃음이 마냥 서글프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게는 주변 사람들을 같이 웃게 만드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었다.) 동시에 그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장했던 이주노동력 착취의 문제를 고발하는 노래를 부르고 집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영화에도 등장하는 멘트지만) 미누씨가 한국 사회에 상징적으로도 실존적으로도 꼭 필요했던 구성원이었음을 드러낸다. . 8.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런 미누씨를 멍청하게도 내쳤고, 정부가 내세우는 다문화 담론은 아직도 텅빈 기표일 뿐이며,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미누씨가, 그리고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한 이후,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 뭘 해줄 수 있는가. 정말로 뭘 해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