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수경

소울
평균 4.0
마을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기사님이 옆 차선의 버스 기사님과 인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목격할 때, 지상을 달리는 2호선의 창문 사이로 인류를 용서하는 듯한 햇볕이 넘쳐 들어올 때, “이번 역은 뚝섬입니다. This station is Ttukseom,” 이라는 안내 방송에 추호의 거짓말도 없다는 걸 내가 알고 있을 때,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 가족에게 나도 거기로 가는 길이라며 함께 걸어가 줄 수 있을 때, 동네 김밥집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바닥에 생긴 무지개에 자기 발을 대보는 모습을 지켜볼 때, 친구들이 내가 만든 음식에 혹독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남김없이 다 먹을 때, 내가 속한 순간을 사랑한다. 내가 선택한 삶이 나를 선택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친구들과 모여 각자 모아둔 돈과 부모의 재산을 털어놓으며 누가 더 착잡한 상황인지 불행 경연을 펼칠 때, 각종 사건들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현황, 막대한 제작비가 들었는데 보는 사람 돈이 아까운 영화, 지나치게 높은 청소년 자살 수치와 산업 재해 사망자 수, 혼자 방에서 내가 화낼 수 있는 모든 것에 화내고 이런 세상에선 아이를 낳지 말자고 다짐할 때, 내가 책임져야 하는 바로 이 삶이 버겁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내 인생이 얼마나 망한 것 같은지 털어놓아야 하는데 아무와도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여태 살면서 한 모든 선택이 후회된다. 내가 하지 않은 선택들을 그리워하며 산다. 결말을 모르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이야기의 결말을 계속 궁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장을 볼 수 있다. 나를 살도록 하는 건 내 간절한 꿈이나 비싼 사물들이 아니다. 그저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며 몇년 전에 비해 얼마나 다양한 문화권의 식재료들이 진열되어 있는지 깨닫는 순간들, 화창하지 않은 회색 하늘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그 순간들을 공유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것들과 그 사람들은 내 삶의 목적이 아니다. 삶은 하나의 목적을 갖지 않는다. 매순간이 즉흥이고 그 자체로 목적이다. 우리는 모두 재즈를 하고 있다. . . "지하철에서 아저씨가 나한테 소리쳤지만 그것마저 약간 좋았어." 영화를 보고 나와서 비가 애매하게 오고 있는 상황이 좋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건넌 모든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빨간 불이라서 기다려야 했다. 생이 좋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미친 존나 너무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민주주의보다, 천체 망원경보다, 아이스크림보다, 비행기보다, 영화가 더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상태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