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BJ

영하의 바람
평균 2.7
'영하의 바람'은 이혼 이후 엄마와 새 아빠와 함께 사는 영하의 10대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 드라마로서 상당히 야심차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을 갖춘 이 영화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의지할 곳도 없는 사람들과 그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생기는 심리와 행동들을 잘 그렸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전개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3에 걸치는 긴 기간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문라이트'처럼 성장하는 캐릭터들에게는 3명의 배우를 할당했다. 각 시기에 따라 주인공의 성격을 조금씩 변경하면서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지를 설명해주며, 한편으로는 그 세월동안 어른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혹은 그대로인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동안 영화는 조금씩 주인공 영하의 가정 환경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풀어가고, 인물들의 욕망과 심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진화하면서도 이 가정이 과연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각자의 욕망으로 인해 와해되는 불안정한 가정의 갈라진 금들을 아주 조용하고 서서히 벌리며, 관객은 천천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이 가족들을 지켜보며 그 임계점이 오기까지 상당한 스릴을 느끼게 된다. 연출적으로는 괜찮은 아이디어들도 많이 보였다. 인물들의 집과 교회를 통해 이 캐릭터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어떤 점들은 그대로인지를 공간의 구도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린다. 오직 겨울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이 계속 맞서야하는 차디찬 바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해야하는 가정, 혹은 교회에서도 영하는 안타깝게도 매서운 추위를 느끼게 되고, 이 공간과 사람들은 바람을 막아주지 못한다. 이런 점들을 영화는 계속 커져가는 바람 소리와 추운 겨울에도 단단히 옷을 무장하지 못한 인물들의 씬을 통해 표현하며, 끝내 썰렁하게 비어가는 영하의 공간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더 춥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하면 주인공을 포함한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목적과 동기가 상당히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꽤 오랜 기간동안 주체적인 캐릭터라기 보단 관객의 눈이 되어주는 역할이어서 어느 정도는 용인이 되지만, 후반부부터는 그것 또한 핑계가 되지 못하게 됐다. 새 아빠와 사촌 캐릭터는 아예 정체된 느낌이 있으며 너무 도구적으로 쓰인다는 인상이 들었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 가장 뚜렷한 목적의식과 그에 따른 행동과 심리를 보인 엄마의 캐릭터가 이들과 대비되어 제일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캐릭터로 느껴졌다. 그에 따라, 권한솔, 옥수분, 박종환 모두 좋은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기억에 남는 배우와 연기 또한 엄마 역의 신동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