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서
9 years ago

왓치맨 Watchmen
평균 4.3
불장난을 좋아했다. 라이터와 스프레이 모기약 하나만 들고 뒤뜰에 나가면, 마치 만화 '왓치맨'에서 화염방사기를 들고 베트남의 숲을 보이는 대로 태워버리던 코미디언이 된 것처럼, 뭐든지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주로 태웠던 것들은 오래된 전나무의 끈적한 송진을 조용히 빨아먹고 있던 중국 매미들이었다. 아파트 뒤뜰의 나무에는 어느 순간부터 시끄럽던 참매미들은 전부 사라지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빨간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채 기분 나쁜 표정처럼 보이는 무늬의 날개를 드러내고 있는 중국 매미들만이 가득했다. 이유 모를 반감에 휩싸여 그것들을 열심히 태워죽였다.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있어 차마 불길이 닿지 못했던 것들은 꺾인 대나무를 주워서 줄기 끝자락에 휴지를 감아 불을 붙인 뒤 태웠다. 멍청한 건지, 아니면 이미 죽어있던 건지, 매미들은 도망도 치지 않고 제자리에서 타닥타닥, 조용히 타죽었다. 매미들을 태우는 게 따분해질 때면, 다른 것들을 찾아 태웠다. 색을 잃고 바짝 마른 나무 열매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짖이겨진 낙엽들, 구슬 같은 사마귀 알껍데기들, 가끔은 거미줄과 거미들도. 내가 그것들을 태우고, 죽였던 것엔 '할 수 있었으니까'라는 말 외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모든 메마른 것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재로 변할 때, 축 늘어져 우울하게 기어가던 민달팽이들은 타들어 가지 않고 녹아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