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oz

미러 넘버 3
평균 3.4
페촐트는 차 사고를 진짜 너무 심하게 성애함(p). 아들 막스와 파이 취향을 두고 토론하며 “‘그냥 좋다’는 안돼, 이유를 설명해야지”라던 베티의 말이 자조적 메타 코미디처럼 느껴지는데 난 이 변주 반복까지 포함한 페촐트의 장난질을 정말 좋아한다. 베를린 홍상수처럼 반복되는 배우 사용법도 찾는 재미가 있다. <내가 속한 나라>에서 조국 잃은 사상범에 젊은 엄마였고, <옐라>에서 ‘그 다음 여자’ 니나 호스가 지나쳐가는 찰나 동안 눈 마주쳤던 사모님이었던 바바라 오어가 이젠 딸을 잃어버린 장년의 여자로 등장한다. 허허벌판에서 초조하게 질주하던 커플이 돌연 '무언가'를 마주치고/직감하고 곧바로 전복 사고를 겪으며,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여자만 그 사고에서 멀쩡히 걸어나온다는 <미러 No.3>의 오프닝은 25년 전 <내가 속한 나라>의 결말에서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해 몽롱하다. <어파이어>의 매력적인 엔노 트렙도 마찬가지로 앞선 남성 페르소나들 로날드 제르펠트와 프란츠 로고스키가 페촐트 영화에서 수행했던 블루칼라 남성성을 훌륭히 계승한다. 고단한 노동계급의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베티, 라인하트, 막스 가족의 둔둔함이 참 좋더라... 원소 3부작에서의 페촐트는 계급의 전복적 낙차를 의식하는 멜로, 특권적 위치를 점한 엘리트-화이트 칼라 남성을 조롱하는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는 듯도 하다. <운디네>에서 베를린 건축사를 설명하는 큐레이터였던 운디네의 똑똑함을 순수한 존경 담아 사랑하던 잠수부 크리스토프. <어파이어>에서 변변찮은 소설가 지망생 레온이 해변의 인명구조원 데비트의 탄탄한 육체로 행하는 노동을 경멸하면서도 질투하고, 아이스크림 판매원인 줄 알았던 나디아가 명문대 문학사 박사생이란 사실에 충격받아하던 얄팍한 모습. 그리고 <미러 No.3>이 도래하자 전작에서 구조원 데비트와 편집자 헬무트였던 남자들이 자동차 수리공이 된다. 부자들의 슈퍼카를 의뢰받아 GPS를 무력화하는 편법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남자들은 베티와 마찬가지로 돌연 길 잃은 라우라의 손끝에서 나온 아주 순수한 예술에 매료된다. 그러나 정작 그애는 베티와 함께 파이를 굽고 정원을 가꾸고 자전거를 타며 땀 흘려 일하는 일상에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계속 '여기에' '같이' 있어도 되는지 묻는 라우라를 결국 엔딩에서 친부가 데려가는데 이때 라우라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베티 가족에게 그 남자가 표하는 성의란 차라리 가족들의 짧은 백일몽을 산산히 깨부수는 발길질에 더 가깝다. "라우라가 9일 정도 머물렀죠? 1500마르크 정도면 될까요? 받아주세요, 우리 딸에게 해주신 일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다시 우리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시간과 사랑은 갑자기 무거운 책임에 따른 과제가 된다. 라우라가 진짜 가족을 가진 도시의 잘 사는 아가씨라는 사실이 베티 가족의 눈 앞에 들이밀어지고 그들은 무력하게 낙담한다. 이상한 것은 차 안에 탄 라우라 역시 그들이 자신에게서 친딸 옐레나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과 버려진 기분을 느끼고 있는 듯한 얼굴이란 점이다. 엔딩에서 베티 가족이 라우라의 졸업 연주회를 방문했을 때, (마치 사랑에 대한 은유처럼)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지 못한 라인하트의 소음에 그들을 발견한 라우라는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귀가해 싱긋 웃는다. 비로소 옐레나 아닌 라우라를 보고 있었다는 가족들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운디네에게 베를린이 실패한 사랑과 배신의 공간이고 크리스토프가 일하는 물로 도피하고 싶어했듯이, 나디아가 아예 대학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별장에서 부러 푼돈 버는 노점 아르바이트를 하듯이, 라우라에게도 베를린은 외부에 알려진 만큼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도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고 전 오프닝에서 라우라는 계속 배회하고 무언가를 분실하고 '괜찮지 않은'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서 이곳이 나의 집은 아니라는 듯한 미아의 표정을 짓는다. 남자친구의 죽음이 상식적으로 슬퍼야만 한다는 것처럼 밀어붙이는 막스에게 라우라는 '슬프지 않아'라고 힘주어 재차 말한다. 페촐트 영화 속 주인공들이 모두 제가 진실로 있어야 할 곳에서 강제로 박리당한 유령을 은유한다면, 결말에서 스토킹을 방불케 하는 촬영본 속 라우라가 '슬퍼 보인다'고 걱정한 베티만이 라우라의 실존적 위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속성 있고 몹시 구조화된 연작의 영향으로, 그 '이해'는 이해, 동일시, 반영, 투사라기보단 마치 그들이 원래 하나의 원형에서 출발한 같은 여자였던 것처럼, 그렇기에 가능했던 완벽한 합치처럼 보인다. 페촐트는 원피스 입고 머리 풀어헤친 파울라 베어도 진심 사랑하는 듯했는데 이번엔 작업복 같은 청바지 입고 머리 질끈 동여맨 캐주얼 처음 봐서 좋았다네요 <쿠바 리브레>와 <유령>과 <페트라> 시절부터 페촐트 영화의 여성 주연들이 생동감 얻고 발달해오는 방식은 가히 진보 넘은 진화에 가까워서 놀라울 정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예에 이젠 대충... 그러니 더더욱 ‘독일적’인 감독이라 느낀다. <어파이어>까지 페촐트는 무척 오래 전력으로 스스로를 갱신하며 달려온 것 같고, 서사적 개연성보다도 회화적 서정성이 훨씬 더 두드러지도록 조형된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한번의 단절, 고의로 힘을 뺀 쉬어가기로 기입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