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넘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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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내키지 않는 시골 여행을 가게 된 라우라(파울라 베어). 들판을 가르며 달리던 차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전복되고 그녀만 홀로 기적처럼 살아남는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중년 여인 베티(바르바라 아우어)는 라우라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따뜻하게 보살피고, 이를 본 남편과 아들은 당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데… 숨겨진 가족의 균열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낸다. 교통사고를 당한 젊은 피아니스트 로라는 낯선 여성 베티에게 구조된 후 그녀의 시골집에 머물게 된다. 베티의 따뜻한 환대와는 달리,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로라에게 냉담하다 못해 거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 공간에서 로라는 자신이 어떤 비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음을 의심하게 된다. 제목이 암시하듯, 로라는 과연 누구의 그림자일까?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미러 NO.3>에서 슬픔과 고독을 잊기 위해 스스로 거짓된 삶을 꾸며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담아낸다. 배우들에게 밀착한 간결하고 정밀한 연출은 영화를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처럼 흥미롭게 이끈다. 로라 역의 폴라 비어와 베티 역의 바르바라 아우어는 감동적인 연기 호흡을 선보이며, 작품의 서늘한 정서를 한층 고조시킨다. 클로드 샤브롤의 방식처럼,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평온해 보이는 독일의 시골 마을을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평범한 일상을 환상과 현실의 경계로 끌어올린다. (서승희)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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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5
물러서지 않고서 떠나보내는 상실에 대하여.
STONE
4.0
주체로서의 응시인 <운디네>와 객체로서의 응시인 <어파이어>의 결말을 지나, 비로소 독립된 한 개체로서의 온전한 재생을 일구어낸 듯하다.
rendezvous
4.5
"상실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하여" 이 작품은 페촐트 감독의 원소 3부작의 마무리를 헛헛하지 않게 해준 느낌이었다. 소품적인 영화이면서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작품이었다. 베티는 상실의 아픔과 허전함을 대체되는 인물인 라우라를 통해 달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고쳐도 계속 고장나는 수도꼭지와 식기세척기처럼 이런 상실의 극복 방법은 전혀 건강하지 못한 삶의 자세이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개성과 존엄성이 있으며, 그 어떠한 사람들도 서로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라우라처럼 그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슬프면 슬픈 대로, 슬프지 않으면 슬프지 않은 대로 말이다. 그래도 두 인물 다 각자의 상실을 잘 이겨낼 거 같아서 미소가 자연스레 지어졌다. 또한, 소리와 음악이 여전히 좋았다. 페촐트 감독의 원소 3부작들의 감성이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든다. 이 작으면서도 소중하고 희망적인 감성이 영원히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ART 1관 25. 9. 27.(토) 14:40] [CGV 크리스티안 페촐트 원소 3부작 특별상영 이벤트 & 2025년 아트하우스 클럽 굿즈 이벤트 수령] [제78회 칸영화제(2025) 감독주간 초청작] [2025. 10. 1. 대개봉] [2025년 #011]
어흥
4.0
고칠 필요 없어 . 아니, 고장 난 건 맞아 나도 알아 누구보다 . 고쳐지고 싶지 않아 지금의 나라 해도 잎사귀는 돋아나거든 . . . 고쳐야겠어 . 너 눈엔 저게 괜찮아 보여? 나는 알아 누구보다 저 아이는 괜찮지 않아 . 그 아이를 생각하라고? 고장 난 본체에 멀쩡한 부품이 있을 수 있나 . 어쩌면 그 아이 역시 본체일지도 . .
134340
4.0
재회는 대체될 수 있는가 상실은 대체될 수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yooz
3.5
페촐트는 차 사고를 진짜 너무 심하게 성애함(p). 아들 막스와 파이 취향을 두고 토론하며 “‘그냥 좋다’는 안돼, 이유를 설명해야지”라던 베티의 말이 자조적 메타 코미디처럼 느껴지는데 난 이 변주 반복까지 포함한 페촐트의 장난질을 정말 좋아한다. 베를린 홍상수처럼 반복되는 배우 사용법도 찾는 재미가 있다. <내가 속한 나라>에서 조국 잃은 사상범에 젊은 엄마였고, <옐라>에서 ‘그 다음 여자’ 니나 호스가 지나쳐가는 찰나 동안 눈 마주쳤던 사모님이었던 바바라 오어가 이젠 딸을 잃어버린 장년의 여자로 등장한다. 허허벌판에서 초조하게 질주하던 커플이 돌연 '무언가'를 마주치고/직감하고 곧바로 전복 사고를 겪으며,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여자만 그 사고에서 멀쩡히 걸어나온다는 <미러 No.3>의 오프닝은 25년 전 <내가 속한 나라>의 결말에서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해 몽롱하다. <어파이어>의 매력적인 엔노 트렙도 마찬가지로 앞선 남성 페르소나들 로날드 제르펠트와 프란츠 로고스키가 페촐트 영화에서 수행했던 블루칼라 남성성을 훌륭히 계승한다. 고단한 노동계급의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베티, 라인하트, 막스 가족의 둔둔함이 참 좋더라... 원소 3부작에서의 페촐트는 계급의 전복적 낙차를 의식하는 멜로, 특권적 위치를 점한 엘리트-화이트 칼라 남성을 조롱하는 코미디에 집중하고 있는 듯도 하다. <운디네>에서 베를린 건축사를 설명하는 큐레이터였던 운디네의 똑똑함을 순수한 존경 담아 사랑하던 잠수부 크리스토프. <어파이어>에서 변변찮은 소설가 지망생 레온이 해변의 인명구조원 데비트의 탄탄한 육체로 행하는 노동을 경멸하면서도 질투하고, 아이스크림 판매원인 줄 알았던 나디아가 명문대 문학사 박사생이란 사실에 충격받아하던 얄팍한 모습. 그리고 <미러 No.3>이 도래하자 전작에서 구조원 데비트와 편집자 헬무트였던 남자들이 자동차 수리공이 된다. 부자들의 슈퍼카를 의뢰받아 GPS를 무력화하는 편법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남자들은 베티와 마찬가지로 돌연 길 잃은 라우라의 손끝에서 나온 아주 순수한 예술에 매료된다. 그러나 정작 그애는 베티와 함께 파이를 굽고 정원을 가꾸고 자전거를 타며 땀 흘려 일하는 일상에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계속 '여기에' '같이' 있어도 되는지 묻는 라우라를 결국 엔딩에서 친부가 데려가는데 이때 라우라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베티 가족에게 그 남자가 표하는 성의란 차라리 가족들의 짧은 백일몽을 산산히 깨부수는 발길질에 더 가깝다. "라우라가 9일 정도 머물렀죠? 1500마르크 정도면 될까요? 받아주세요, 우리 딸에게 해주신 일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다시 우리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시간과 사랑은 갑자기 무거운 책임에 따른 과제가 된다. 라우라가 진짜 가족을 가진 도시의 잘 사는 아가씨라는 사실이 베티 가족의 눈 앞에 들이밀어지고 그들은 무력하게 낙담한다. 이상한 것은 차 안에 탄 라우라 역시 그들이 자신에게서 친딸 옐레나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에 배신감과 버려진 기분을 느끼고 있는 듯한 얼굴이란 점이다. 엔딩에서 베티 가족이 라우라의 졸업 연주회를 방문했을 때, (마치 사랑에 대한 은유처럼)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지 못한 라인하트의 소음에 그들을 발견한 라우라는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귀가해 싱긋 웃는다. 비로소 옐레나 아닌 라우라를 보고 있었다는 가족들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운디네에게 베를린이 실패한 사랑과 배신의 공간이고 크리스토프가 일하는 물로 도피하고 싶어했듯이, 나디아가 아예 대학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별장에서 부러 푼돈 버는 노점 아르바이트를 하듯이, 라우라에게도 베를린은 외부에 알려진 만큼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도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고 전 오프닝에서 라우라는 계속 배회하고 무언가를 분실하고 '괜찮지 않은'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서 이곳이 나의 집은 아니라는 듯한 미아의 표정을 짓는다. 남자친구의 죽음이 상식적으로 슬퍼야만 한다는 것처럼 밀어붙이는 막스에게 라우라는 '슬프지 않아'라고 힘주어 재차 말한다. 페촐트 영화 속 주인공들이 모두 제가 진실로 있어야 할 곳에서 강제로 박리당한 유령을 은유한다면, 결말에서 스토킹을 방불케 하는 촬영본 속 라우라가 '슬퍼 보인다'고 걱정한 베티만이 라우라의 실존적 위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속성 있고 몹시 구조화된 연작의 영향으로, 그 '이해'는 이해, 동일시, 반영, 투사라기보단 마치 그들이 원래 하나의 원형에서 출발한 같은 여자였던 것처럼, 그렇기에 가능했던 완벽한 합치처럼 보인다. 페촐트는 원피스 입고 머리 풀어헤친 파울라 베어도 진심 사랑하는 듯했는데 이번엔 작업복 같은 청바지 입고 머리 질끈 동여맨 캐주얼 처음 봐서 좋았다네요 <쿠바 리브레>와 <유령>과 <페트라> 시절부터 페촐트 영화의 여성 주연들이 생동감 얻고 발달해오는 방식은 가히 진보 넘은 진화에 가까워서 놀라울 정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예에 이젠 대충... 그러니 더더욱 ‘독일적’인 감독이라 느낀다. <어파이어>까지 페촐트는 무척 오래 전력으로 스스로를 갱신하며 달려온 것 같고, 서사적 개연성보다도 회화적 서정성이 훨씬 더 두드러지도록 조형된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한번의 단절, 고의로 힘을 뺀 쉬어가기로 기입될지도 모른다.
raffy
3.5
영화의 시선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에 숨이 막힌다.
조종인
3.0
감독 이름값을 생각했을때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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