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JE

JE

4 years ago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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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영화 ・ 1971

평균 3.8

올트먼 감독이 만든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배경 탓에 괜히 더 그렇게 보는 건지도 모르겠으나, 정말 서부(극) 신화에 대한 은근한 조롱이 짙다. 화려한 전설을 지닌 총잡이-자본가 맥케이브건만, 정작 전설은 의아해 보이고 자본적인 능력마저 창녀인 밀러 부인에게 밀린다(특히 이때 밀러 부인이 지적하는 회계, 위생, 월경, 성병 등의 문제는 참 탈신화적인 대목처럼 보인다). 그런 밀러를 혼자 사랑하면서도 (몸 파는 걸 말리지도, 손님들을 탓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고백은커녕 혼자 뒤에서 "유일한 사랑"이라는 둥, 자신은 "시를 품은 남자"라는 둥 겨우 궁시렁거리는 게 맥케이브다. 한껏 덩치를 키우는 털옷과 대자본을 대하는 무모함이 그야말로 허장성세처럼 느껴지는데, 기실 무능함을 보자면 맥케이브는 (총, 자본, 남성성, 서부적 신화 따위에 대한 흔한 은유에 빗대자면) 발기부전을 앓는 서부 사나이라 하겠다. "누굴 쏴 죽일 위인이 못 된다"는 멕케이브에 대한 상대의 평가마따나, 담판이나 결투의 순간에서도 비굴하고 긴장이나 초조함이 역력하다. 특히 영화 말미, 총을 든 목사에게 겁을 먹고 도망가는 장면이나 몰래 숨어 있다 간신히 적의 등을 쏠 때 잔뜩 찌푸린 표정과 움츠린 몸, 와중에 총을 맞아 냅다 비명을 지르는 순간의 궁상맞음이 (앞서 다리 위에서 비정하고 비열하지만 서부극의 관습처럼 총을 쏘던 적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상당히 인상적이다. 심지어 마지막엔 죽은 척하고 있다가 쏴 버리기까지 한다.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정말 정의도, 낭만도, 멋도, 신비도 없는 서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단순히 맥케이브에 대한 (탈서부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맥케이브와 그 공동체를 연민하거나 향수라도 어리게끔 하려는 듯이 서정적인 노래와 아름다운 풍경, 희멀건 필터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는 점이다. 물론 <내일을 향해 쏴라>나 <관계의 종말> 등 뉴 아메리칸 시네마 시절 서부극처럼 서사를 떠나 제 자체만으로도 무드와 세계를 창조하는 음악의 형태와 질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게 진정으로 순수한 낭만을 그리고 있다거나 연출적인 실패라기보단 외려 불균질한 무드를 통한 조소처럼 다가온다.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냉소적인 이야기와 화면 바깥에서 불어넣는 대책도 근원도 없는 무드 사이에서 생기는 충돌. 어느 쪽을 믿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를 기묘한 그 불균질함이야말로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을 수정적, 안티적, 풍자적인 서부극으로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