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ed의 영화일기

기나긴 이별
평균 3.7
2021년 02월 11일에 봄
이 영화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이 원작이고,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 원작답게 주인공은 필립 말로우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나온 필립 말로우들이 중절모를 쓰고 험악한 인상(대표적으로 험프리 보가트)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필름 누아르 캐릭터로 나왔다면, 이 영화의 필립 말로우(엘리엇 굴드가 연기했다)는 곱슬머리에 느슨하게 맨 넥타이를 흔들며 어기적 어기적 걷는, 탐정이라기 보단 꺼벙한 동네 백수가 더 어울리는 인상으로 나온다. 이는 필름 누아르 속 필립 말로우에 익숙한 관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필립 말로우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시각적 선포이자 영화 자체도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펼쳐질 것임을 인지시키는 상징적 연출이기도 하다. 달라진 외모와 함께 캐릭터의 성격 역시 완전히 다른데, 터프함은 찾을 수 없고 어딘가 허술하고 정이 많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렇다고 필립 말로우가 가지고 있던 사건 해결을 위한 끈질김과 결단력은 버리지는 않아서 중요한 순간마다 범죄 영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은 또 충실히 한다. 이 양면적 모습이 이 영화의 필립 말로우를 사상 최고로 매력있게 보이게 하며, 실제로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등의 모습으로 계승돼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주인공 캐릭터의 느슨함은 장르적 느슨함으로 이어져, 영화는 범죄 해결에 무게를 뒀다기보단 차라리 70년대 미국의 혼란한 현실을 담는데 더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필립 말로우 옆집에 헐벗은 여자들은 70년대 미국 히피들의 모습이요 "경찰들, 당신들이 언젠간 대신 감옥에 들어갈거요!" 라는 필립 말로우의 외침은 반전 시위와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경찰의 진압이 만연했던 당시의 정국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정작 범죄의 진행은 후반부에 몰아 넣은듯한 인상을 주며 해결은 캐릭터들의 몇 마디로 간단하게 대체된다. 본말이 전도된듯한 구성은 알트만의 끊임없는 성적 메타포 삽입으로 엔딩에 가서야 오묘하게 풀린듯한 인상을 주지만 역시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부족한 구성을 메우는 또 하나의 요소가 존 윌리엄스의 음악으로 영화 내내 변주돼 흐르는 재즈풍의 'The Long Goodbye'는 영화의 낭만을 극대화 시키고 나도 사건 해결 따윈 잊어버리고 70년대 미국을 흠뻑 느끼는 걸로 만족하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이걸 정리해서 말하면, 영화는 기존 범죄 영화가 주었던 치밀한 플롯을 바탕으로 한 두뇌 유희가 아닌, 한 시대의 감성을 극대화해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공략하는, 이전 시대와 다른 접근법을 선보인 '새로운 형태의' 범죄 영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내 성향이 장르적 충실함보다 '새로움'에 더 민감했다면 훨씬 높은 평가를 내렸겠지만 적어도 '범죄영화'에서 만큼은 장르 본연의 재미를 더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나에게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메리칸 뉴 웨이브의 기수 로버트 알트만의 도전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화가 주는 활력에 일정 부분 매료됐음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