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정환

정환

4 years ag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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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희와 녹양

영화 ・ 2018

평균 3.6

“세상을 향한 그 무수한 궁금증과 질문들을 향해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다니기보다는, 굳이 거창한 이유를 만들 필요 없이 그저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만의 궁금증과 질문들을 품고선 성장해나가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잠수하고, 헤엄치며 세상을 유영하는 법을 배우다.”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마치 내 이야기를 본 것처럼, 아니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져서였을까.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리는 것도 옆자리 내 삶에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부끄러워 말 못 하는데, 안 그래도 슬퍼 보이는 어른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맘 편히 내 눈물을 흘릴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글쎄, 왠지 좀 슬퍼 보이는 어른들이 많아 보였다. 그렇지만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한 엄마에게 오죽 싫으면 그랬었을까 싶어 그 이유를 물어보지도 않았던 보희였다. 그냥 그래 보였고, 그랬을 것 같아서 저 멀리서 어른들의 세계를 짐작할 뿐이었다. 실은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사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보희는 그런 말을 하게 만들어서 되레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보희는 아빠를 그렇게 찾고 싶지만, 막상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소년이다. 정말 아빠를 찾고 싶은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것은 잘못한 게 아님에도,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해 물어보지를 않는다. 심지어 스스로가 하는 일에 있어서도 왜 이 일을 하는가에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갈수록, 더욱이 답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애당초에 그 질문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세절한다. 사실은 그리도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중요했던 것이지, 그 이유가 중요하진 않았다. 보희와 녹양이 이리도 친하게 지내는 이유가 뒤늦게 나오지만, 난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미지에 대한 이유보다 우리가 그것을 탐구하고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인다. 어떤 거창한 이유 없이도 그냥 그들의 모습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세상을 향한 그 무수한 궁금증과 질문들을 향해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다니기보다는,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엔 슬퍼 보이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들이 왜 슬픈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더 다양한 어른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문신만을 보고 양아치냐 아니냐를 판단하려 했지만, 실은 그가 보희에게 형이자 아버지였던 것처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의 세계처럼, 나에게 미지였던 지나간 시간들과 앞으로의 남은 시간들을 알아가는 방법이었다. 지금 당장 보희가 아버지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뭐였고, 영화관에서 잠만 자고 있던 녹양은 왜 영화를 찍으려 할까. 굳이 이유를 만들 필요 없이, 그들은 그들만의 궁금증과 질문들을 품고선 성장해나가는 각자 나름의 방법이었다. 우리에겐 누군가의 부재를 향해 그 이유를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기에, 나에겐 없으나 너에겐 있는 듯한 무언가를 향해 질투할 필요도 없었다. 나의 부족한 무언가는 서로가 채울 수 있었기에, 어쩌면 내가 많이도 부족하기에 네가 다가올 수 있었다. 매일 누군가를 기다리며 눈물을 흘렸던 그 공간을 너로 메꿀 수 있었으니까. 우리에게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가 없던 자리에, 할머니가 없던 자리에, 가족이 없던 자리에 그 마땅한 이유 없이도 함께해 주는 이들이 있다면야. 그래. 왠지 좀 슬퍼 보이는 어른들이 많은 이 세상을 향해 그 이유를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나름의 고민을 안고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다. 멀리서 짐작만을 하는 것이 아닌, 가까이에 다가가 씩씩하게 무엇이라도 하는 것. 내 스스로가 이유를 알지 못하더라도, 내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무언가라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조금씩 세상을 향해 앞으로 헤엄쳐가는 나를 보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테니. 잠수를 배워본 적도 없던 내가 그렇게 세상을 향해 잠수하고, 헤엄치며 끝내 유영하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