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드

안이라는 이름의 여자
평균 3.5
아사히신문에 실린, 한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조명한 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 어둠 속에서도 실낱같이 보이는 빛줄기에 희망을 품다가 또다시 드리워지는 더 큰 어둠을 마주하면서 머리와 가슴이 모두 먹먹해지는 감정적인 여운과 파장이 진하면서 계속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엄마의 학대로 인해 숱한 폭력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고 매춘과 약물 중독의 길로 빠지게 된 한 소녀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영화 속에선 흡사 하나의 재난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종종 인물을 극한의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으며 그를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에서 하나 더 나아가 철저히 구조의 대상으로 보며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면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 영화는 사람 간의 유대를 형성하는 것에 그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선 재난이 두 번 등장합니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무책임함과 억압 속에서 만들어진 이 가정 자체가 하나의 재난이고, 또 하나의 재난은 영화의 중간 지점에서 이야기를 확 꺾어버리는 코로나입니다. 이 이야기를 한 재난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열심히 스스로 형성하는 인물이 사람으로부터 떼어져야만 하는 또다른 재난을 마주하게 되면서 무너지는 이야기로 생각해 본다면, 그게 또 한 소녀의 이야기라면 더욱 먹먹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렇게 수렁에 빠진 사람을 자립할 수 있게끔 구조의 메세지를 내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 희망을 가지게끔 비추다가 그를 암흑 속으로 또 한번 확 밀어 떨어질 만큼의 비극적인 삶을 살아 온 사람의 이야기를, 심지어는 마치 국내 독립영화들 중 어떤 부류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인물을 가장 극단적으로 몰고가면서 가학과 비극만이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낼 수 있다는 듯 각색하면서까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걸까를 생각해 보면 그 지점에 대해선 제겐 좀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 모든 영화가 당연히 행복하고 희망찬 이야기만을 전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가장 비극적인 불행의 연속을 마주하는 이야기에서 오는 가슴 아린 여운 역시 예술의 한 필요성으로 제겐 느껴지는데, 그에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안데르센의 '성냥 팔이 소녀' 같은 게 있겠죠, 근데 이 영화는 이 이야기를 베이스로 택해 각색해 이 정도 크기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그 이유와 의도가 엄마라는 개인에 대한 혐오감을 유발하기 위함인가 싶은, 제게는 그렇게까지 그 의도가 전달되진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재미라고 얘기하기도 참 어려울 정도로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재미도 있고 몰입도도 높은 작품이였습니다. 카와이 유미는 다른 영화에서 봤을 때의 이미지를 가지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른 채 이 영화를 본다면 카와이 유미인가 싶을 정도로 아예 다른 느낌을 보여주는데, 영화가 점점 진행해 갈수록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 일어나보려는 인물을 정말 탄탄하게 연기해냅니다. 그 외에 사토 지로의 연기도 무척 좋습니다. 전반부에선 마치 푹신한 쿠션처럼 연기하다 어떤 사건 이후 마지막에 가선 어떤 말을 되풀이하는데 무척이나 인상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