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팜므파탈캣💜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평균 4.1
2025년 03월 11일에 봄
내가 쓴 시들 같아 소름이 돋았다. 특히 1부와 몇몇 키워드가 주는 심상은 내 마음을 그러쥐고 꼬옥 꼬옥 짜낸 정수같아 공감하고 허전하게 울었다. 나의 10대가 생각났다. 아무도 모를 말로 다친 내 마음을 써두고도, 그래도 누군가는 이 세 다리를 건너 알아봐주기를 바랐던 어린 시인. 보이지 않는 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수수께끼같은 말맛도 너무 반가웠다. 250312 (3.6) - 1. 오랜만에 정말 시를 음미하며 시집을 읽었다. 쭈욱 읽고 다시 읽고 또 다시 머릿속에 완전해진 그림 안에 운율을 곱씹으며 소리내어 읽어보는 방식으로... 너무 좋았다. 2. "기침할 때마다 흰 가루가 폴폴 날린다. 이것 봐요 내 영혼의 색깔과 감촉. 만질 수 있어요 여기 있어요 - 소동 中" 감수성 좋다. 뭔가 나를 보는 것 같아. 1-20대의 나. 해방되고 싶어 잔뜩 안으로 소동하던 그 때의 나 같아 3. "너는 모든 것이 너를 조롱하고 있다고 느낀다. 의자가 놓여 있는 방식. 달력의 속도. 못 하나를 잘못 박아서 벽 전체가 엉망이 됐다고 - 굴뚝의 기분 中" 4. "깨어진 꽃병이 가장 찬란했다는 것을 모르고. 심장에 기억의 파편이 뺴곡히 박힌 줄도 모르고 - 굴뚝의 기분 中" 와 진짜.. 내 감수성이야... 뾰족하고 외롭고 여리고 예민하고 파르르 떨리던 그 감수성 5. "애벌레는 무사히 무당벌레가 될 수 있을까. 무당벌레는 자신의 무늬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 업힌 中" 와 진짜... 나같은 묘사법.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게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세 다리를 건너서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와 .. 진짜... 작가님 내적 친밀감이 생긴다고 6. "아가야, 나는 이것을 작게 만들어야 한단다. 그리고 아주 깊숙한 곳에 감추어야 하지. 어디가 깊은 곳인데요? 얘야, 지척에. 흘러가버리는 순간순간에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中" 와 진짜... 진짜 이 묘사법... 너무 소름돋게 뭔가 ... 와 ... 너무 동질감 느껴지고 와 .. 너무 반가워 7. "보기에 좋아야 한단다 아가야, 허물 수 없다면 세계가 아니란다. 털실의 길이는 제각기 달랐지만 어떤 뭉치든 빛과 어둠의 총량은 같았다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中" 와 진짜.. 진짜 반가워 8. "너무 늦게 그곳으로 갔다 숲에는 수백개의 나무둥치만 남아 있었다. 뒤덮을 흙이라면 충분했다 얼마든 달아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똑똑히 보았다 숲은 날개 없는 새가 되어갔다 날아오르려다 주저앉고 날아오르려다 주저앉는 소리 때문에. 한밤중에도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이 숲을 완성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 미동 中" 너무.. 공감가. 나도 모르게 쉽게 가버린 길이 뜨악하니 나를 베고 있다는 그 불안의 묘사 9. "길 잃은 양을 봤어 홀로 숲속을 헤매다 늑대를 만났는데 저도 모르게 와락 끌어안더라 - 마중 中" 캬... 알 것 같아... 10. "빛의 살점 같은. 제법 깊은 곳까지 떠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출발할 수 없다고 했다 - 마중 中" 캬.. 이런 이런 트위스트 알지알지... 너무 반가워. 어떻게 나는 한 번도 이런 느낌의 시를 못 봤을까? 온통 초록초록 순수하고 맑고 예쁜 시들만 봐서 지겨웠는데, 이런 감수성 반갑다 11. "덫에 걸린 사슴의 발이 검게 썩어들어갈 때. 당신은 수없이 지나다니던 방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붉을 대로 붉어진 사슴이 절뚝이며 당신에게로 돌아올 때. 당신은 수백개의 신발이 강물에 떠내려오는 꿈을 꾼다 - 연루 中" 진짜.. 알 것 같다구.. 뭔가 자신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구간 구간 다른 뷰파인더를 들이대며 타자화하는데 사실 그 심상은 너무 잘 알고 있는거지... 12. "만년설을 녹이기 위해 필요한 건 온기가 아니라 추위 아닐까. 안에서부터 스스로 더 얼어붙지 않으면 - 추리극 中" 진짜 계속 인용하고 싶어 너무 좋다. 인류애를 잃어가는 와중에도 100번째 양이 되지 않으려는 반대편의 마음 하나를 이렇게라도 으쓱하고 싶은거 ㅠ 13.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中" 2부는 확실히 색채가 달라! 14. "이 질문은 무게가 없어요 이런 슬픔으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어요 그런 말들에 발이 묶인 채 - 빛의 산 中" 내 감정을 하잘없이 묘사해서 그렇게 동정어린 눈으로 나를 봐주세요 하는 그 감수성 ㅠㅠ 알 것 같아 15. 오 연작시도 있으신가봐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가 2부에도 있어. 다른 시들에서 언급되던 "반딧불이 부락"과 수많은 "신발"과 작디작은 먼지같은 "영혼" 그리고 묻어진 "얼굴"을 이해할 수 있는 시야. 결구 영원을 몰라 퍼덕이지 못하는 영혼들을, 믿지 못하겠는 그 이름들을 할아버지가 바구니에 모아 빵으로 다시 돌려보낸다는 내용. 크.. 다른 시들이 다 빌드업이었어 16. "거짓을 말한 사람은 없었다"는 또 다른 인류애 상실과 희망편이야 ㅠ 같은 결이야 17. "얼음은 녹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을 무심히 뱉었다. 녹기 위해 태어났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 표적 中" 사람도 죽기위해 태어났는 걸... 18. "흰쥐, 한마리 흰쥐의 가여움. 흰쥐, 열마리 흰쥐의 징그러움. 흰쥐, 수백마리 흰쥐의 당연함. 질문도 없이 마땅해진다 - 표적 中" 와.. 가여운 이들의 불행에 대해 불쾌해하고 또 잊게되는 19. "할아버지, 이 땅엔 노래가 없어요. 울음을 터뜨리는 내게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벌거숭이의 노래를 가져왔구나, 얘야. 그건 아주 뜨겁고 간절한 노래란다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中" 같은 제목의 비슷하고도 다른 세계관의 시들이 나오는 거 좋다. 연이어 나오지 않지만 메시지는 어째서인지 이어져 20. "달 없는 밤을 견디기 힘들었다. 고작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많았다 - 실감 中" 이렇게 달의 의미도 드러나네. 손댈 수 없는 운명의 온기 21. "오늘도 그는 새를 기다리러 간다. 그의 새장은 아직 비어 있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 반려조 中" 비어있어서 오히려 더 완벽한 것일지도 22. "덧칠" 이 심상도 뭔가 너무 공감이 간다. 사랑을 만나 잃고 싶지 않아 가리고 덮고 애지중지해도 언젠가의 한숨하나에 그건 와르르 무너지고 그래서 나는 너가 되어 묻는거지. 더 두터운 하양이어야 한다고. 캬.. 23. 작가님 시에서 "흰"의 메시지도 확실하구나. 흰 접시에 담고픈 누군가의 순간들과 희게 덮어 잊고프지만 결국 회색 웅덩이에서 끝나는 나의 순간들. 가식, 거짓, 노력, 슬픈 가면. 어쩜 이렇게 구간 구간 다 이입이 되고 공감이 갈까? 24.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미리 아프려고. 내 마음이 던진 공을.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 캐치볼 中" 너무 공감가... 누가 베기전에 미리 붉게 물들여 나는 나는 조용할 수 있도록 25. "내가 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두더지처럼 - 태풍의 눈 中" 그 언젠가 이런 싯구를 썼던 기억이 나... 진짜 소름돋는다 작가님 나 이신가.. 뇌공유라도 한 적 있나 내가? 26. "그런데 말이야, 잘못 배달되지 않은 사랑이 과연 있을까 더구나 생명이라면 - 측량 中" 27. "물을 마시지만 물을 침범하지 않는 사랑을 알고 싶었다 - 측량" 문구들이 예쁘다 이 시 28. "나를 도려내고 남은 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여전히 내 안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내가.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내가 - 스페어 中" 이런 가벼운 절망과 허무의 심상... 공감가.. 29. "몫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덜 미워하게 될는지도 ... 영원히 잠든 토끼의 영원히 찾지 못할 영혼을 생각하면. 몫이라는 말 결코 다정하지는 않지만 - 몫 中" 알지 알지... 세월에 무뎌져도 어딘가는 절대 놓을 수 없는 불안이 남아 30. "당신은 무엇을 담는 사람인가요? 물어오는 풍경 앞에서. 나의 규모를 생각한다 - 나의 규모 中" 31. "아픈 기억이라고 해서 아프게만 말할 필요는 없다. 퍼즐 한조각만큼의 무게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 퍼즐 조각을 수천수만개 가졌더라도 - 슈톨렌 中" 이거지! 이런 마음인거지 32. "칠레의 시인 파라가 모든 시인은 ‘자신의 고유한 사전을 가져야만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시인이 사물에 다른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 사물이 품고 있던 다른 세계를 여는 것이라는 생각에 잠긴다. 명명은 시인의 숙명이다" 작가님의 사전이 너무 좋다. 청소년기에 무수히 썼던 시들에서 비슷한 방식의 허무와 절망과 슬픔의 사전을 썼던 터라 너무 동질감 느껴지고 좋다. 33. 같은 제목의 서로 다른 시를 나열해 독자가 이야기를 메꾸게 하는 방식도 작가님께서 자주 쓰는 방식이라고 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