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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ony

minjony

3 years ago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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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책 ・ 2018

평균 3.5

2023년 05월 07일에 봄

p13 사랑은 프라이빗한 것이지만 쇼잉이기도 하다는 것 p22 잘 지내, 미래는 현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긴 현재일 뿐이야 p23 사랑의 형식인 연애는 끝이 나지만 사랑이라고 하는 상태는 끝이 나지 않아서 미래가 현재의 무제한 연장인 것처럼 어쨌든 유지되리라는 것, 가능한 죽을 때까지 사랑하리라는 것. p35 미래는 절대 긴 현재 따위가 아니고,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고 선택하는 것이었다. 우리 미래가 가능하자면 현재의 불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불안을 증폭시켜 서로의 현재를 찢고 나와야 했지만 매기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p50 우리는 머리가 정말 와글와글해지는 기분이었다. 개미를 왜 만들었어, 왜, 잠깐만 생각해봐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누가 개미 같은 시시한 곤충에 신경을 쓸까, 그건 잠자리처럼 날지도 반딧불이처럼 빛나지도 하다못해 꿀벌처럼 어떤 달콤함을 암시하지도 않는데. 그것은 그냥 바닥을 기면서 그 무던함과 성실함으로 바글거리며 한 입 한 입 물어다 겨우 개미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사명을 걸고 어느 선택된 여왕개미의 다산을 위해 복종하면서 아둔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그 무더기의 개미 인형을 보며 무언가 인생이 참 허망하다 ―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다, 덧없다, 사라진 매기처럼. p54 동료들과 그 개미지옥 같은 부스를 철거하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김승복 선생이 더 이상 현찰이 아니라 비자가 발급한 신용카드를 쓰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선생이 드디어 신용카드를 쓰게 되었다는 것은 그 모든 신념의 물러섬이나 느슨함을 뜻하는 것일까. 내가 매기라는 쓰나미를 뒤집어쓰면서 매번 인생의 전도 顚倒를 경험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시대가 그랬다면 매기가 나라이고 매기가 적폐이며 매기가 과거이자 매기가 독재자, 매기가 민주 시민 매기가 미래이자 예언자인가. p55 매기를 사랑하고 나서 줄곧 나를 붙잡았던 의문은 왜 내가 이런 관계를 선택했는가, 였다. 그런데 적어도 9호선에 몸을 구겨 넣고 만원의 상태를 견디며 바닥과, 그 바닥의 깊음과, 그래서 겪는 불편과 고통과 힘듦과 귀찮음 모두의 원인인 한강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매기와 나의 관계에서 선택이란 가능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빗물이 손바닥을 적시듯 매기가 내 인생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는. p79 다시 재회한 우리는 이전과 같은 패턴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환멸과 냉소, 갈등과 분열 같은 것에. 고작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고 있다는 건 난센스니까 우리는 행복해야 했다. 안전해야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p83 나는 아직 그런 나이가 되지 않아서 그것이 무엇일지는 짐작만 할 뿐이었지만 지금의 기분과 같으리라 상상했다. 자꾸 빈 곳이 만져지는 기분 같은 것이었다. 육체나 기억은 물론이고 시간이라는 것에 있어서도, 어제도 오늘도 불분명한, 그 경계가 제대로 감각되지 않는,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서 지금이 어제인 것 같기도 하고 오늘인 것 같기도 한데 어차피 일상은 과거가 반복되는 것이니까 심지어 내일이 될 수도 있는. p85 어쩌면 하루하루를 그렇게 셈하는 일이란 불필요한지도 모른다고, 그냥 사느니 일상이고 보내는 것이 인생이니까 오늘을 특정할 필요가 없다고. 매기가 있는 나의 내일이 어떨지 예측할 수 없고 매기를 넣지 않고는 오늘을 견뎌낼 수 없는 지금은 특히 그랬다. 셈할 수 없는 빈 시간을 늘려나가며 보내는 계절들이었다. p88 사라진다는 것은 부재하는 대상의 강력한 능동이 감지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매기는 지금 내 곁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p101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했던 오늘은 단지 긴 현재일 뿐인 미래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p105 택시 잡을 생각도 못 하고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걷다가 나는 ‘철새 도래지’라는 교통표지판을 보았다. 어디로 갔든, 어디에서 무엇을 했든 다시 돌아와 닿을 수 있는 만灣을 지닌 도시. 나는 여기야말로, 매기를 위한 곳, 그리고 어떠한 미화도 하지 않고 우리가 헤어질 수 있는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p114 이렇게 텅 비어, 주인이 없는 집들에 와 있으면 복작이던 모든 순간들이 사라지고 결국 인생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고. p125 나는 그것을 주고받았을 때의 느낌을 아마 긴 시간이 흘러도, 어쩌면 매기와 관련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가져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디에도 미뤄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매기에게도 정권에게도 이 세상이나 어느 사랑에게도. 아무리 동산 수풀은 사라지고 장미꽃은 피어 만발하더라도, 모두 옛날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시간이 지나 나의 사랑, 매기가 백발이 다 된 이후라도. p128 그런 조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방황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본래 실패하도록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재훈과 매기의 손목에 새겨지는 X자 표시는, 서로에게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기에 앞서, 사랑의 본래적인 실패를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135 우리는 이렇게 아무것도 예상치 못한 채 살아가지만 그렇게 해서 조금씩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나중에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오늘의 당혹스러움을 내일로 미루는 이 습관을 버리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떤가. 그런데도 기꺼이 겪어내며 살겠다면, 지금의 무게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지만 알 때까지 분투할 자세만은 취하고 있겠다면. 나쁘지도 이상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