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전대원

전대원

10 years ag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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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럼 샷

영화 ・ 2008

평균 3.6

현대판 (혹은 서구판) <만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딸과 아버지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히고 충돌하는 감정의 양상은 서로 비슷했지만,그 미묘한 심리를 보여주는 방식은 많이 달랐다.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이 하나의 풍경에 차분히 머물러 지겨울 정도로 세세히 묘사한 뒤 다음 장면을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뚝뚝 끊기고 생략되거나 잘 보여주지 않는다. 친절히 말해주지 않은 채 숨긴다. 인물들은 잘 말하지 않고 사건들은 잘 설명되지 않는다. 표정으로, 이미지로 나타난다. 상당히 시적으로 흐른다.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혹은 아버지의 태도) 역시 <만춘>과 많이 다르다. <럼 35잔>의 아버지는 자신의 욕망에도 비교적 충실하다. 딸만을 바라보며 '희생'하지 않는다. <만춘>의 엔딩처럼 홀로 외로이 술잔을 기울이는 일은 없다. 작품 막바지에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럼 35잔을 마시는 장면에서는 '끝'보다는 '시작'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아버지의 뒷 모습이나 옆 모습이 아닌 앞 모습이당당히 나타나는 이 장면은 분명히 <만춘>의 엔딩씬과 현저히 대조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어떤 분명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외롭고 두려우며 불안하지만, 새로운 '기대'를 가져봄직한 우리 아버지 세대의 희망이랄까. 이제 그들에게 더이상 '뒤안길'이나 '희생'따위의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