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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맡 책. 페소아의 등에 몸을 포개두고 가만히 기대있고 싶다. 바람 한 줄기 흐르지 못하도록, 그의 등이 내뿜는 고독인지 내 가슴이 쏟아내는 슬픔인지 알 길 없도록, 서로의 열기로 채워지는 따듯함만 느낄 수 있도록 꼭 기대어 있을 수 있다면. - 하나의 서적을 두고 작업한 역자가 여럿일 때, 그 이점을 독자들이 충분히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오진영 역으 읽었다. 아래에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는 텍스트들 중 일부를 역자별로 남겨둔다. - <텍스트 6> 오진영 역 인생에서 원했던 것은 너무나 적었건만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줄기 햇살, 가까운 들판, 한줌의 평온과 한 쪽의 빵,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 인해서 괴로워하 않기, 다른 이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것도 요구 받지 않기.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거부당했다. 동냥 주는 것 거절하는 이가 동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 주머니 단추를 풀기 귀찮아서 그러듯이 결국 내가 원한 것들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적막한 내 방에서 홀로 서글픈 심정으로 글을 쓴다. . 배수아 역 나는 삶에게 극히 사소한 것만을 간청했다. 그런데 그 극히 사소한 소망들도 삶은 들어주지 않았다. 한 줄기의 햇살, 전원에서의 한순간, 아주 약간의 평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빵, 존재의 인식이 나에게 지나치게 짐이 되지 않기를, 타인들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그리고 타인들도 나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그런데 이 정도의 소망도 충족되지 못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이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의 단추를 풀고 지갑을 꺼내기 귀찮아서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지않은 것처럼, 삶은 나를 그렇게 대했다. 적막에 잠긴 내 방에서, 슬픔으로 나는 글을 쓴다. 항상 그랬듯이 혼자이며, 앞으로도 항상 혼자일 것이다 . . <텍스트 18> 오진영 역 나는 언제까지나 회계사무원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 시나 문학은 내 머리에 앉은 나비와 같아서,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나를 더 우스꽝스럽 만들 것이다. . 배수아 역 죽는 날까지 회계원으로 일하기, 아마도 내 운명은 이것이리라. 그에 비하면 시와 문학은, 엉뚱하게 내 머리에 올라앉아 나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나비일 뿐이다. 나비의 아름다움이 찬란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더 우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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