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구리
3.5

해협
영화 ・ 2019
평균 3.3
영화는 타이난에 사는 한 여성의 편지로 시작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Letters to Buriram'이다. 대만 타이난에 사는 여성은 태국 부리람에 사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는 타이난 인근에 위치한 화롄에서 지닌이 났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여성은 카메라를 들고 타이난을 찾은 한국인 남성과 진먼 섬에 가기로 한다. 진먼 섬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 국군에게 포격을 가했었던 8.23포전이 벌어졌던 공간이다. 두 사람은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패 중 한국인 기자의 이름을 발견한다. 이제 영화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동아시아 국가 사이의 전쟁을 담아낸다. 중국과 대만, 일본과 미국, 남한과 북한, 조선과 일본, 영화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한국전쟁과 8.23포전, 그리고 임진왜란까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담아낸다. 그것은 대부분 전쟁이 벌어졌던 두 국가 사이에 위치한 해협을 찾아가고, 각 국가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전쟁으로 인해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개된다. <해협>은 이미 벌어진 전쟁들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유일한 판단은 동아시아 현대사를 전쟁으로 가득 채운 원흉인 '천황'이라는 존재를 내치지 못하는 일본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대신 전쟁에서 죽어나간 수많은 사람들, 8.23포전에서 사망한 한국인 기자부터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어뢰에 침몰한 여객선에 타고 있던 조선인,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 등의 이야기를 담는다. 아니, 이야기라기보단 2010년대 후반까지도 남아 있는 그 흔적들을 쫓아간다. 영화에 담긴 것은 마치 지진처럼 갑작스레 전쟁을 겪은 개인들이다. 카메라는 망자들의 잔상을 찍고, 지진이라는 계기로 이를 떠올린 여성은 그 감정을 어머니에게 편지로 써내려간다. 영화에 부리람은 딱 한번 나온다. 그것은 필름카메라로 촬영된 사진 몇 장이다. 아무일도 벌어진 적 없는 것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네, 하지만 정지된 부리람의 모습은 망자들의 안식처와도 같은 곳으로 존재한다. 다소 느린 호흡으로, 영화가 무엇을 다루려는지 설명하지도 않은 채 진행되는 불친절한 영화지만, 그만큼의 시간 동안 해협을 떠도는 혼령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