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일

쓰리 몽키스
평균 3.6
부패한 정치인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고 수감된다는 결정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 가족들. 어쨌든 그들에게 제일 급한 것은 다름이 아닌 돈이었기에. 감옥에 들어가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기로 거래를 한 그. 거의 1년에 육박하는 가장의 부재에 남겨진 나머지 가족들의 삶은 서서히 균열되어 간다. 남편의 기나긴 부재 사이에 피어오르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그리고 충족에 대한 욕망. 결국 아내는 남편과 거래를 한 정치인에게 돈을 선지급받기 위한 제안을 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개인의 욕망마저 실현시킨다. 남편은 감옥에 들어가고, 아들은 취업은커녕 깡패들과 어울려 다니며, 막내는 이미 예전에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얼마나 한 인간이 나약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의 충족인가. 남편이 출소한 뒤에도 그녀는 정치인과의 짧은 만남에서 느꼈던 강렬함을 쉽게 잊지 못하고, 결국 남편에게 외도의 사실을 들키고야 만다. 인간이 가장 나약해진 시점에 경험한 관계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구원의 순간으로 착각될 수 있다는 무서움. 이제는 그녀를 삶에서 떼 놓으려고 발악하는 정치인과 그를 떠나지 못하는 아내.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아들의 시점 숏. 아들은 이 모든 비극의 중심을 정치인의 탓으로 돌리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 그를 죽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과연 정치인이 없어진다고 해서 가족의 화목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들의 유대는 정치인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위태로웠다. 만약 아들의 계획대로 그를 죽인다고 할지라도 단지 수많은 문제점들 중 하나가 사라졌을 뿐, 결코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리적인 폭력의 수단이 가지는 명확한 한계. 결국 정치인을 죽인 아들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서 아버지는 찻집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 정치인이 본인에게 사용했던 비겁한 술수를 반복한다. 바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어리석음. 결국 여러 차례의 비극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의 발생과 그 상황으로 인한 인물들의 행위 사이의 과정이 다소 섬세하지 못하지만, 고독의 질감으로 프레임을 덧씌운 이미지의 정서만큼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의 순간이다.